ADVERTISEMENT

통일 후 이산가족 분쟁 대비 ‘남북 가족 특례법’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해 2월 북한에 거주하는 윤모씨 남매 4명이 남한의 계모 권모씨와 권씨 자녀 4명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남한에 있는 아버지의 상속재산 일부를 요구하는 소송이었다. 윤씨 남매는 한국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져 북한에 남겨졌다. 올 6월 유전자 검사에서 이들이 친자가 맞다는 결과가 나왔다. 재판 과정에서 자녀가 부모의 중혼(重婚) 취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민법 818조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올 8월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는 이 같은 남북 주민의 가족관계와 재산상속 등에 관한 원칙을 담은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 및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가칭) 초안을 마련했다고 28일 밝혔다. 특례법은 모두 30여 개 조문과 부칙으로 구성됐다. 법무부는 공청회를 거쳐 이르면 올해 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특례법은 남북 관계가 급변하거나 통일을 전후해 일어날 수 있는 법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됐다. 주요 내용은 ▶남북 이산가족의 중혼 처리 ▶남북 주민이 공동 상속받을 때 남한 주민의 기여분 인정 ▶북한 주민이 상속·증여로 받은 남한 내 재산의 국외 반출 제한 등이다.

특례법에 따르면 이산가족 부부가 재결합해 중혼문제가 생길 경우 원칙적으로 남북 분단 이전의 전혼(前婚)보다 이후의 후혼(後婚)을 보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자녀가 남한의 부모를 상대로 한 중혼취소 청구를 제한할 방침이다. 오랜 남북 분단으로 왕래는 물론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재혼이 중혼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현행법상 중혼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형택 통일법무과장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북한 내에서 이뤄진 결혼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례법은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조항도 넣었다.

또 남북 주민이 공동으로 유산 상속자가 됐을 때 남한 상속인의 기여분을 인정하도록 했다. 남한의 자식이 재산 증식에 기여했다면 상속분을 나눌 때 그만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북한 주민이 남한의 부모로부터 상속이나 증여 등으로 남한 내 재산을 얻었을 때 그 재산을 처분하거나 국외로 가져가는 것을 제한키로 했다. 단 인도주의 차원에서 생계비 정도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북한으로 가져가는 것을 허용했다. 이 같은 내용은 북한 주민의 상속권을 보호하면서 남한 재산이 제한 없이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이 과장은 “최근 북한의 자녀들이 남한의 유산 상속권을 주장하며 벌인 소송이 계기가 돼 특례법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북한 상속자의 유산을 대리인에게 신탁해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재산관리청’(가칭)과 같은 재산관리기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조만간 세미나를 열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부 조문을 재검토하는 등 보완 작업을 거칠 계획이다.

이철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