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지형이 바뀐다] 중. 교수 117명에게 물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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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역사 어젠다를 앞세운 보수 진영의 새로운 움직임을 사회과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본지는 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역사학회 소속 현직교수 117명을 대상으로 ‘뉴 라이트’운동에 대해 지난달 28일 전화 설문조사를 했다. 이달 11일에는 이 중 78명으로부터 추가로 ‘자유지식인선언그룹’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세 학회 소속 교수 중 이미 보수 운동에 참여했거나 명백히 반대 입장을 표명한 교수들은 설문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사 결과 386과 중도파가 결합한 뉴 라이트 운동이 정통 보수를 표방한 자유지식인선언그룹보다 교수들로부터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 라이트 운동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거나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라고 밝힌 교수가 47%였고, '공감하지 않는다'고 밝힌 교수는 52%였다. 반면 자유지식인선언그룹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거나 공감하는 편'이 36%, '공감하지 않는다'는 62%였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뉴 라이트 운동이 40대 중.후반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연령대의 교수보다는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더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50대 이상 교수 중에서 뉴 라이트 운동에 공감한다고 밝힌 이는 69%인 반면 49세 이하 교수 중에서 그렇게 대답한 이는 33%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뉴 라이트 운동과 자유지식인선언그룹에 대한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이제 뉴 라이트 운동으로 좁혀보자. 뉴 라이트 운동의 활동 영역을 어젠다별로 묻는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94%가 한.미동맹을 뉴 라이트 운동의 제1 어젠다로 꼽았다. 뉴 라이트 운동을 '정치세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전체 응답자 중 39%가, 특히 49세 이하 연령층에서는 49%가 이 운동의 종착지를 정치권으로 보았다.

설문에 응한 교수들에게 뉴 라이트 운동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왔을까. '뉴 라이트 운동 하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는 물음에 '보수 우익'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32%로 가장 많았다. 이름에 '새로운(new)'이라는 표현을 달고 있긴 하지만 어젠다 등에서 참신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교수들 사이에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 다음으로는 신보수우익(16%), 자유민주주의(11%), 나쁜 이미지(9%), 좋은 이미지(8%), 중도(6%), 변혁이나 새로운 시도(4%)의 순이었다.

뉴 라이트 운동에 공감한다고 밝힌 교수 중에서 그 이유를 '정권 차원의 좌파 쏠림 현상에 대한 반동'이라고 밝힌 사람이 29%나 됐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 정치와 경제에 적합한 이념이라서'(13%), '바람직한 방향이라서'(12%)가 많이 꼽혔다. 둘째와 셋째 이유를 합한 것보다도 정권 차원의 좌파 쏠림이 더 많은 셈이다. 첫째 이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답이 ▶새로운 우파로 나아가기 위해▶자유민주주의를 신장하기 위한 실천▶중도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에 공감해서 등 다소 막연한 것이 많았다. 뉴 라이트 운동에 공감하는 교수들도 아직은 명확히 정리된 논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뉴 라이트 운동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밝힌 교수 중에는 그 이유를 '순수하지 못해서'라고 대답한 이가 30%로 가장 많았다. 이는 뉴 라이트나 자유지식인선언그룹이 넘어야 할 1차 관문이기도 하다.

뉴 라이트가 기존의 보수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50대 이상이 62%로 49세 이하의 49%보다 많았다. 전체적으로는 54%가 '뉴 라이트 운동은 기존의 보수와는 달리 전개될 것'이라고 보았다. 차이점이 있다고 보는 이유로는 '합리적인 보수'(30%)가 가장 많이 거론됐다. 또 응답자의 50%는 뉴 라이트 운동이 장기적으로 활동을 펴나갈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한편 '자유지식인선언그룹이 기존의 보수와 차이점이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대답한 교수 78명 중에는 72%가 '차이점이 없다'고, 27%는 '차이점이 있다'고 각각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각종 성명이나 언론에 거론된 활동상황, 참여 인물의 면면 등에 대해 교수들은 대체로 호의적 또는 유보적이다. 결국 보수운동의 성공 여부는 향후 움직임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명진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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