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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끊고 관광 막고 구속하고 … 일본, 선택의 여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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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원을 끊고, 관광을 막고, 보복성 인신 구속까지 나선 중국의 전방위 압력에 일본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지난 7일 일본 정부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일본 순시선에 고의로 충돌한 혐의로 중국 어선의 선장을 구속한 지 17일 만의 결정이었다. 사건 초기 “국내법에 의거해 의연히 대처할 것”(마에하라 외상)이라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던 일 정부가 중국 정부의 초강경 공세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그래서 “거침없이 성장하는 중국, 힘없이 추락하는 일본의 위상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붙잡혀 구속된 중국인 선장 잔치슝(41)이 수감돼 있는 오키나와현 이시가키 경찰서 앞에 24일 밤 취재진들이 몰려있다. 일본 검찰이 이날 잔 선장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잔 선장은 이르면 25일 중국으로 송환될 전망이다. [이시가키 AP=연합뉴스]

일본 정부로 하여금 백기를 들게 한 결정타는 중국 당국의 희토류(稀土類) 수출금지 조치였다. 중국 상무부가 공식 시인은 안 했지만 21일부터 일 기업들에는 “(구속된 선장의 구류 기한인) 29일까지 희토류 수출을 보류한다”는 통지가 전달됐다. 당장 일 경제계는 발칵 뒤집혔다.

22일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ヶ関) 관청가에 위치한 경제산업성에는 상사와 자동차 업체 등의 임원들이 긴급 소집됐다. 이날 모임에서는 각종 정보 수집 결과 “중국의 반발 강도가 예상을 초월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총리 관저에 ‘조기 수습’을 강력히 건의해 달라”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희토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자동차, 액정패널 등 일본이 자랑하는 첨단제조업에선 빠져선 안 되는 핵심 소재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7%를 차지한다. 가뜩이나 희토류 수출량을 줄여온 중국이 최대 수입국인 일본에 대해 사실상의 금수(禁輸) 조치까지 취할 경우 일본 제조업의 생명선은 사실상 끊기게 되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24일 “일본이 중국인 선장을 구속한 직후부터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외교부, 상무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관변 싱크탱크의 일본 담당자들이 구체적 대일 (보복)조치를 강구했다”며 “일본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찌르는 제재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가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그 결과물이 희토류 금수조치였던 셈이다. 또한 중국 정부가 사실상의 ‘일본 관광 자제령’을 내린 것에도 일본 정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이달 중순까지 국토교통상으로 중국인들의 일본 관광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상에게는 “중국인 관광객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 그러느냐”는 업계의 반발과 압력이 쇄도했다.

여기에 24일에는 일본인 4명이 군사시설을 불법 촬영했다는 이유로 연행된 사실이 전해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보고가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에게 전달됐고, 간 총리는 이를 수락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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