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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권에 흔들리지 않을 통일 대장전 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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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달 중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을 돌파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인구로 따져 세계 26번째 국가다. 휴전선 이북에 살고 있는 2400만 동포까지 합하면 7400만 명이다. 통일이 되면 한반도는 터키를 제치고 세계 18위의 인구대국이 된다. 현재 74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 중 선진국은 미국·일본·독일 세 나라뿐이다. 한반도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이 하나가 된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세계사적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짠다는 각오로 통일에 대비하는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통일세’를 제안한 것을 계기로 통일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웬 통일 타령이냐는 반론도 없지 않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돼 ‘통일 대비 10개년 플랜’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통일에 대비해 앞으로 10년 동안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꼼꼼한 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예산의 1%를 통일 기금으로 매년 적립하자는 제안을 국가 어젠다로 제시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정부의 통일 플랜 준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다만 정략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국가적 책략을 짠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자유와 인권이 넘치는 평화롭고 부강한 선진일류국가는 통일 한반도의 비전이 돼야 한다. 반드시 그런 국가를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각오로 정략적 고려를 일절 배제하고, 정권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통일의 대장전(大章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국민적 합의다. 지금처럼 남남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합의 도출은 어렵다. 극단으로 갈라진 시각차를 좁혀 중간점을 찾는 방향으로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 양측과 고루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이 통일을 택했기에 가능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북한 주민이 통일을 거부한다면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북녘 동포를 보듬어안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셋째는 국제적 지지 확보다. 현실적으로 주변국이 반대하면 통일은 어렵다. 특히 중국의 지지와 협조는 절대적이다. 그 점에서 현재의 허약한 외교력이 안타까운 것이다. 외교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통일의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다. 그 기회를 잘 살려 평화롭고 부강한 선진일류국가로 가느냐, 못 가느냐는 지금부터 준비하기에 달렸다. 준비 부족으로 호기(好機)를 살리지 못 한다면 대대손손 후세들에게 낯을 들 수 없는 역사의 대죄(大罪)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