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토크] 악마도 입게 하는 마력 '명품'에 감히 시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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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그래 널 인정하겠다. 예술품을 빚는 정신으로 만든다는, 그래서 가격 기준선이 일반 제품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겠다는 말이다. 그래도 이 세상 물건인데 웬만큼 비싸야지, 정도가 너무 심한 거 아냐?
이렇게 물고 늘어졌더니 저 쪽에서 다시 묻는다.
이 세상 물건? 그렇지, 지금 이 땅 위에 있는 물건이지. 근데 이 세상엔 당신이 상상하기 어려운 부자들이 많아. 엄청난 부자는 아니더라도 씀씀이는 그 이상을 달리는 사람도 많고. 그 사람들에겐 그냥 적절한 가격일 뿐야. 심하게 비싸다는 기준, 그건 당신, 평범한 당신 잣대라구.
이거 되로 주고 말로 받는구만. 그래도 그렇지. 이 땅의 물건이고 나도 이 땅의 사람인데, 비싸다고 말 못할 건 없지.
이 사람 되게 질기구만. 그래 좋아, 당신 생각에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는 거야?
누구, 대답할 사람 없어요? 자신 있는 사람, 아무나 말해 보세요. 아니, 자신 없어도 돼요. 어차피 정답은 없을 테니까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 말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꼬셨더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쭈빗거리며 손을 든다.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뭐라구요? 품질이 비슷한 시장 물건보다 2~3배 정도면 좋겠다고요? 그렇습니까? 아, 녜, 저기서 재청이 나왔습니다.
예끼, 이 사람들, 아직도 명품이 뭔지 모르는구만. 그만 가시오. 저리 써~억 물러가시오.

들은 대로 이런 사람은 명품 시장을 기웃거릴 자격이 없다. 명품의 생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품의 가격은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당하단 말인가. 적절한 가격은 없지만 정답은 있다. 만든 사람 맘 대로다.
본래 물건 값이라는 걸 만드는 사람이 정한다. 일반적으론 제조원가에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고 이문을 붙이면 소비자가격이 된다. 하지만 어떤 회사도 이걸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 공공성이 강하고, 특히 서민들의 행복권에 치명적이라며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해 과거 정부가 도입하려 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제도도 제동이 걸렸다. 시장원리에 안 맞는 걸 강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농심을 볼까. 라면 1개 만드는 데 밀가루가 얼마고, 인건비가 얼마고, 전기세가 얼마고, 광고모델료가 얼마고, 그리고 회사가 먹는 마진은 얼마라고 공개하는 걸 봤는가. 현대차가 에쿠우스 한 대 만드는 데 R&D 비용이 얼마고, 부품가격이 얼마고, 환경부담금이 얼마고, 딜러 몫이 얼마고, 그래서 한 대 팔 때마다 회사에 떨어지는 이익이 얼만지 제 입으로 얘기하던가. 이런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를 명품 브랜드에 적용하겠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년 데이비드 프란켈 감독이 만든 영화다. 프라다로선 천금을 주고도 못 살 제목이다. 이 얼마나 섹시한 슬로건인가. 단 세 마디의.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처음 문을 연 이 브랜드의 창시자는 마리오 프라다다. 오늘날 악마도 입도록 하는 마력을 부리는 사람은 그의 외손녀 미우치아 프라다다. 정치학을 전공해 박사까지 딴 그녀가 1971년 가업에 뛰어들었을 때 성공을 예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의상이나 악세서리나 디자인은 당연히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부자 집안의 딸로서 그걸 보고 즐기는 눈은 있었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나일론 천으로 만든 검은 가방을 내놓았다. 명품을 자처하는 브랜드가 감히 나일론으로 가방을 만든다고? 가죽의 위엄을 깡그리 뭉개는 도전이었다. 그래도 제작 방식은 가죽가방을 만드는 그대로 원용했다. 낙하산을 만들던 나일론으로 만든 가방은 어땠을까. 가죽을 능멸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일단 나일론 가방이라는 것 자체가 화제를 몰고 왔다. 마침 젊은 여성들 사이에 실용주의 바람이 불었고,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며 활동성도 강조되던 때였다. 나일론 백팩은 무엇보다 아주 가볍고 튼튼했다. 양쪽 끈으로 등에 지니 무게감은 더욱 미미했다. 가죽의 최대 약점인 물도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뭐가 묻어도 젖은 수건으로 쓱 닦으면 그만이었다. 결과는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2010년, 지금도 잘 나간다. 인터넷에 '프라다 나일론 백팩'을 치면 100만원을 조금 웃도는 게 가장 싼 가격이다. 디자인과 크기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168만원짜리도 바로 보인다. 요즘 세상에 이런 가방 만드는 데 들어가는 천 값은 얼마나 될까. 그냥 흔한 나일론이 아니라고 강변할 테지만 소비자가격에 비하면 상상 이하로 쌀 것이다. 이런 회사에 천값이 얼마고, 인건비는 얼마고, 디자인 비용과 광고를 포함한 마켓팅 비용은 얼마인지 공개하라면 뭐라고 할까.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따라서 이른바 명품이라는 물건의 가격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4000만원에 가깝다는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격을 도대체 어떻게 분해할 것인가. 가격=재료비+공임+일반관리비+마케팅비+마진. 더 없이 간단한 1차 방정식이지만 과연 누가 풀 수 있을 것인가. 스티븐 호킹 박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그러니 그냥 그들 맘대로 붙인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시간 이후, 명품 브랜드에 감히 가격 시비를 걸지 말 일이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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