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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문 열 자율고 63% 법정부담금 다 못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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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개교 44돌을 맞은 대구 경신고는 내년 3월 교육과정운영과 학생선발이 자유로운 자율형사립고로 바뀐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자율고로 지정받았지만 살림살이가 이상하다. 법인 측은 사학법상 반드시 내야 할 교사 4대 보험액 등 법정부담금 2억6000만원 중 0.9%인 250만원만 부담했다. 학생으로부터 받은 총등록금 수익 24억원 중 법인이 학교에 내놓은 돈도 연간 250만원에 그쳤다. 이 학교가 정말 재정이 열악하다면 자율고로 전환하지 말고 계속 정부로부터 재정결함보조금을 받아 운영해야 한다. 반면 일부러 돈을 대지 않았다면 교육청이 처벌해야 한다.

이런 학교가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는 자율고로 어떻게 지정됐을까. 학교 관계자는 “이사장이 개인 재산을 출연해 15억원이 예탁된 장부증명서를 제출해 간신히 통과했다”며 “교육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과부가 올해 지정해 내년 개교 예정인 자율형사립고 24곳 중 15곳(63%)이 연간 1억~3억원 정도의 법정부담금도 낼 형편이 되지 않는 부실 사학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보환(한나라당) 의원은 교과부와 시·도 교육청에서 제출받은 ‘2009학년도 사립학교 교비회계 세입 결산’ 자료를 19일 공개했다. 올해 지정된 25곳 가운데 3월 개교한 하나고를 제외한 24곳 중 8곳은 전국 1675곳 사립 초·중·고 법정부담금의 평균납부율 22.5%에도 못 미쳤다. 자율고 지정요건인 ‘등록금 대비 법인전입금 비율’ 기준을 지키지 못한 데도 11곳이었다. 그나마 기존 자립형사립고에서 올해 자율고로 전환된 민사고 등 5곳을 제외하면 법정부담금을 완납한 곳은 서울 용문고, 광주 보문고, 울산 성신고 등 3곳뿐이었다. 미림여고는 99%를 냈다.

◆왜 이런 일 생겼나=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인수위 간사 시절부터 ‘학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따라 임기 말인 2012년까지 자율고 100곳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여력이 되는 학교부터 학생 선발·교육과정상의 규제를 풀어 자율을 주고, 사학에 들어가는 국고보조금은 아끼자”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지난해와 올해 25곳씩 50개 고교가 지정됐다. 하지만 교과부가 목표치를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지정기준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지정돼 올해 개교한 자율고 20곳의 법정부담금 납부율 평균은 86%였다. 이 가운데 11곳은 법정부담금을 완납했다.

박 의원은 “올해 지정된 부실사학의 대부분은 자율고의 5년 재평가 기간 동안 법정부담금을 겨우 댈 수 있을 정도(5억~15억)의 재정계획서를 내고도 심사를 통과했다”고 지적했다. 법정부담금 외에 매년 10억원을 법인에서 지원하는 대구 계성고의 김재현 교장은 “법정부담금도 채우지 못하는 학교라면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없어 자퇴생이 생기는 등 파행이 우려된다”며 “정부가 자율고 숫자 늘리기에만 연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 조상식(교육학과) 교수는 “애초 100곳 지정 등 포퓰리즘적 공약의 목표치를 수정하고 지정된 자율고 운영 개선에 힘을 쏟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법인전입금과 법정부담금=사학 법인이 학교에 매년 내놓는 지원액이 법인전입금이다. 교과부는 자율고 지정요건에 총 등록금 수입 중 법인전입금 비율을 광역시 지역은 5%, 도지역은 3%로 규정했다. 법정부담금은 전입금 중 법인이 반드시 부담토록 사학법이 규정한 교직원의 4대 보험액이다. 여력 있는 사학이 이 돈을 내지 않으면 처벌받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정부가 보충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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