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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정과 나눔의 의미를 새기게 하는 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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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올해엔 전국적으로 4000만 명가량이 움직인다니 추석은 소통의 명절임이 틀림없다. 매년 추석 때는 그 시점을 지배하는 화두(話頭)나 이슈가 가족의 밥상에 오르곤 한다. 2006년엔 북한의 핵실험 선언이 최대 화제였다. 2007년엔 대선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야당의 열세가 워낙 심해 사람들은 대선 대신 ‘신정아’ 얘기를 많이 했다. 2008년의 화제는 어려운 민생이었다. 세계적 금융위기의 목전에서 사람들은 “경제 살리라고 뽑아주었더니…”라고 불평했다. 2009년엔 세종시와 경기회복이었다. 추석 여론을 업지 못한 세종시 수정은 나중에 결국 폐기됐다.

올해 추석엔 공정(公正)과 친(親)서민이 주요 화제가 될 것 같다.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데다 청문회 파동을 거치면서 공정이란 잣대가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권이 복지예산을 5조원이나 늘리자 야당도 몸이 달았다. 때마침 당권 레이스까지 겹쳐 야당에서도 ‘진보·복지·친서민’의 외침이 풍성하다.

공정과 친서민의 연장선상에서 정치권은 이번 추석에서 ‘나눔’을 강조하고 있다. 사재 300여억원을 출연해 공익재단을 만든 이명박 대통령은 월급 1400여만원을 여러 형태로 기부하고 있다. 그는 그제 ‘제1회 대한민국 나눔문화 대축제’에 참석해 거액기부자들을 격려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례적으로 동영상을 제작해 나눔을 역설했다. 그는 “어느 해보다 힘겨운 여름을 보냈지만 이번 한가위는 가족을 만나고 이웃을 돌아보며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권의 나눔 캠페인은 ‘공정하고 나누는 사회’로 가는 하나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건 사회 전체가 자성(自省)과 배려를 통해 개혁을 실천하는 데 있다고 본다. 중앙일보 창간 특집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3%가 한국은 불공정한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에서 공정과 나눔을 위한 움직임이 있지만, 국민은 수십 년간 축적된 불공정 구조에 여전히 좌절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사교육 시장에서부터 불공정이 시작되고, 사교육에서 지면 대학과 취업 경쟁에서 패배하며, 나중에는 결혼과 주택 그리고 삶의 질에서 뒤처져 영원히 불공정한 인생이 된다는 위기감이 약자들 사이엔 팽배하다.

추석은 위로의 명절이다. 무더웠던 여름만큼이나 힘들었던 1년을 살아온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고, 나눔과 가족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유달리 이번 추석에서 나눔이란 글자가 새롭게 보이는 것은 공정이란 화두가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처럼 추석의 밥상에 공정이 오를 것이다. 지도자나 국민이나 공정이 명절용 화제로 그칠 게 아니라 사회 개혁을 통해 각자의 삶에 실현될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