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경 일방주의를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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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환경갈등으로 나라 전체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어제는 새만금 간척공사를 중지하라는 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그제는 지율 스님의 단식으로 경부고속철 천성산 터널공사가 중단됐다. 장기간의 사업 차질과 천문학적인 비용 손실이 불가피하다.

연이은 결정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환호하고 있다. 청와대도 극한상황을 피해 소수의 의견까지 수렴한 절반의 성공이라 자평한다. 이는 반드시 환호할 만한 일인가. 뒷감당은 누가 하는가. 결국 지금까지의 헛돈 투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나간다. 환경은 환경문제 하나로 떼어 놓고 판단할 수 없다. 경제와 효율성이라는 문제와 함께 봐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허술한 평가시스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안일한 대처를 꼽는다. 그러나 15년간 헤매는 새만금 사업이나 2조5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드는 천성산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먹고사는 일과 환경을 어떻게 조화하느냐다. 환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무조건 떼를 쓰면 굴복하고마는 정부를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환경문제와 국민소득 간에는 역 U자의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이른바 환경쿠즈네츠 곡선이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환경파괴가 급증하지만 국민소득 1만~2만달러 시대를 지나면서 환경문제가 감소한다는 실증된 논리다. 환경에 대한 투자가 늘고 첨단 환경기술이 개발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개발시대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는 통하지 않는다. 영월 동강댐, 부안 원전센터 등에서 분명해진 사실이다. 국민의 58.2%가 정부 주도의 국토개발을 환경파괴로 보고 있다. 향후 국책사업의 혼선이 깊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제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환경갈등을 예방하는 사회적 합의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정치.종교.환경단체의 합의로 해결한 사패산 터널은 훌륭한 모델이다.

우선 정치권의 허황된 선거공약부터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눈앞의 표만 노린 새만금이나 천성산 터널이 그렇다. 정부 역시 경제적 가치는 턱없이 부풀리고, 환경영향은 낮게 매기는 잘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 1994~98년 33건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에서 불과 한 건만 탈락했다. 이에 비해 경제성을 뻥튀기한 지방 공항들은 문도 열지 못한 채 놀고 있지 않은가.

대안 없는 극한투쟁에 골몰하는 환경단체들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일부 환경단체는 '환경 장사'하다 들통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지금 지방마다 권력화한 환경단체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공권력이 이렇게 흐물거리니 환경만 팔면 무엇이든지 얻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 있다. 넘쳐나는 사이비 환경운동가보다 현실을 살피는 환경전문가가 절실하다. 예를 들면 에너지원이 없는 우리의 경우 원전 없이는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환경론자들은 원전이나 원전센터를 짓는 데는 결사 반대다. 환경론자만을 따라간다면 우리의 전력 공급은 불가능해진다.

다니엘 벨은 "정부가 우리 생활의 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작고, 우리 생활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환경갈등을 정부 손에 맡기기에는 지나치게 웃자라버렸다. 이제 국민이 최종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정 세력에 얽매여 전체의 공동선을 희생코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부를 맡겨서는 안 된다. 세금을 내는 것도, 환경문제의 궁극적 귀착점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국민 스스로가 환경과 경제의 균형점이 어디인가에 예민해야 한다. 이 균형점을 찾아내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다음 선거의 주요한 이슈로 만들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