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경기 불씨 살아났다" … 정말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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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수가 살아날 것이란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려했던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한두 달치 통계를 보고 경기 회복을 섣불리 속단하긴 어렵다. 그러나 나오는 지표마다 사상 최악의 기록 행진을 했던 지난해 말보다는 분위기가 훨씬 밝아진 것은 사실이다. 내수 회복 조짐을 진단해보고, 이를 본격적인 회복국면으로 연결하기 위한 대책은 어떤 게 있을지 점검해봤다.

"오랫동안 참으며 구조조정을 해 온 결과 이제 경기 회복의 자생적인 불씨가 살아났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의 경기를 이같이 진단했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단정하긴 이르지만 회복의 불씨가 살아난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부총리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잘 살려내면 이번에는 호흡이 상당히 긴 성장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낙관적인 전망은 아직 이르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올 1월 각종 지표가 좋게 나오고 있는 것은 설 연휴가 지난해엔 1월에 들었지만 올해는 2월인 데 따른 계절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설 연휴로 인해 2월 지표는 다시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본격적인 경기 회복 여부는 3월 지표가 나오는 4월에야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다만 경기는 경제주체의 심리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면 경기 회복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지표가 좋아졌다지만 아직은 불안한 만큼 정부가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정책기조를 바꾸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 국민에게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주문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 심리 회복은 뚜렷=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소비자기대지수는 소비 심리의 회복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6개월 후의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기대지수가 올 1월 90.3으로 지난해 7월 이후 80대에서 7개월 만에 90대로 올라섰다. 소비자기대지수는 도시지역 2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만든 지수로, 100을 기준으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비관적인 전망이 많고, 위로 올라갈수록 긍정적인 전망이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경기에 민감하고 소비를 많이 하는 20대의 기대지수가 103.3으로 8개월 만에 100을 넘었다. 또 소비를 주도하는 4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기대지수도 99로 한 달 전의 93.1보다 높아졌다. 최근 백화점 매출이나 신용카드 사용실적, 자동차 내수 판매, 휘발유 판매 등이 늘어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투자도 밝은 신호가 속속 나오고 있다. 건설경기는 아직 침체돼 있지만 대형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 달 후 건설경기 전망 실사지수는 지난달 50에서 이달에는 112.5로 껑충 뛰었다. 건설수주와 건축허가면적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를 엿볼 수 있는 기계.설비 등 자본재 수입이나 트럭 등 상용차 내수 판매 역시 올 들어 증가세로 돌았거나 증가폭이 커졌다.

◆ 신중론도 만만치 않아=우선 자동차 내수판매가 늘어난 것은 지난해 말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새 모델을 내놓은 데 따른 '반짝' 효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수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아직 고소득층과 20대 등 일부 계층에 국한된 현상이란 게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심리 지표의 개선이 아직 소비.투자의 실적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12월까지 소비.투자 실적은 계속 악화됐다. 특히 앞으로 경기전환 시기를 예고해 주는 경기선행지수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지난해 12월까지 9개월 연속 하락했다는 것은 경기 낙관론을 경계하게 만든다. 투자의 바로미터가 되는 산업용 전력사용량도 지난해 9월 8%에서 12월에는 3.9%로 증가율이 오히려 떨어졌다.

수출도 불안하다. 올해는 미국 경기의 회복 속도가 느리고 중국이 경기 과열 억제 정책에 나설 가능성이 커 수출 증가율이 뚝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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