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최후의 사활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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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11보 (126~138)]
黑 . 이세돌 9단 白.구리 7단

흑의 철벽 속에서 항복을 거부하는 구리(古力)7단의 단말마적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피를 뒤집어쓴 듯한 그의 용맹은 대담한 이세돌9단의 가슴마저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126,128은 스스로 사지로 기어드는 수다. 언뜻 수가 안 되는데도 마구잡이로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시 후 드러나지만 초읽기의 다급함 속에서도 구리의 수들은 모조리 한 가닥 살수(殺手)로 연결되고 있다. 팔다리를 다 내주더라도 적장의 급소를 향해 단 한칼을 성공시키려 한다.

130,132,134,136 등 동분서주하는 정신없는 움직임도 척 보기엔 백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만 여겨진다. 그런 분위기였던 탓에 검토실에서는 더 이상의 연구를 중단한 채 안쓰러운 심정으로 백의 처절한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138이 떨어졌을 때 다시금 미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뭔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바로 왔다.'참고도1' 흑1로 차단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백2로 덤벼올 때 그 이후가 의외로 간단치 않다. 3으로 끊어 수상전으로 귀를 잡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그 틈을 타 백도 10,14로 뒤를 조여붙이며 크게 살아버리는 것이다.

그게 골치가 아프다면 '참고도2' 흑1로 물러서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백2를 선수 한 뒤 4로 넘어가면 A의 수가 있어 그냥 죽을 것 같지 않다. 관 속에 들어간 듯했던 구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짐을 싸 떠나려던 이세돌9단에게 다시 한번 어려운 문제가 주어졌다. 수가 깊은 강자를 상대로 바둑 한판을 이긴다는 것은 이처럼 힘든 일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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