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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추위로 … 전염병으로 … 토종 꿀벌 떼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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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그렇지 않아도 비싼 토종꿀, 올해는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연초엔 추운 날씨에 벌들이 얼어죽고 바람에 날아가버리더니 여름 들어선 전염병이 돌았다. 병명은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데 한 번 걸리면 유충의 피부가 굳어지면서 살이 녹아내리며 죽는다. 특이한 점은 서양 벌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토종벌만 걸린다는 것이다. 토종벌을 기르는 양봉업자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발만 구르고 있다. 그동안 토종벌이 집단적으로 병에 걸린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대책도 없는 상태다.

벌은 토종(동양 벌)과 서양 벌로 나뉜다. 성질과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서양 벌이 가축이라면 토종벌은 야생동물이라고 부를 정도다. 서양 벌은 성질이 유순하고 사람이 주는 먹이에 많이 의존한다. 기르기 쉬워 전체 양봉업의 80%가 서양 벌을 기른다.

반면 토종벌은 길은 들지 않았지만 놔두면 알아서 살아가기 때문에 손이 덜 든다. 야생이어서 병에도 강하다. 게다가 양봉꿀이 한 병(2.4㎏)에 4만~5만원인데 토종꿀은 이보다 4~5배쯤 비싸게 팔린다. 이 때문에 최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토종벌이 급속하게 늘었다.

일부에서는 전염병이 발생한 원인으로 이 같은 생태계 교란을 꼽기도 한다. 야생에서 견딜 수 있는 적정한 개체수를 넘어 서식 밀도가 높아지면서 병에 취약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발병 경로와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정부는 토종벌을 죽이는 이 병을 ‘법정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가축질병 재해보험 보상 대상에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피해를 본 토종벌 농가에는 200억원의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소독약품비를 지원한다. 백신을 만드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우선 발병 경험이 없으니 벌의 몸 속에 항체가 있을 리 없다. 감염은 곧 떼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치료약도 없는 상태다. 꿀벌의 ‘신분’도 문제다. 꿀벌은 법상 어엿한 가축이다. 그래서 질병 진단도 수의사가 해야 한다. 꿀벌을 치료해본 수의사는 전국에 손꼽을 정도. 제때 수습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국내에 있는 토종 꿀벌의 절반이 사라졌으니 후유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벌이 사라지면 나무와 꽃들이 수정을 할 수 없다. 지역에 따라선 과일과 채소가 열리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최용수 박사는 “아직 국내에서 꿀벌의 적정 개체수가 얼마인지에 대한 연구가 안 돼 있는 상태”라며 “벌 수가 줄어든 게 식물의 수정에 악영향을 끼칠지 벌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지는 내년 봄에 모니터링을 해봐야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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