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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병준의 중국읽기] 안분지족(安分知足)

중앙일보

입력

삼국시대 오나라의 주유周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모두 갖춘 30대 중반의 엄친아형 인재였던 그의 뛰어난 계책 덕분에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曹操의 대군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유비劉備의 브레인인 제갈량诸葛亮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삼국연의三國演義』 제55회를 보면 주유는 자신의 강적이 될 제갈량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유비를 동오東吳로 불러들인다. 시합 내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주유는 막판에 제갈량이 조운趙雲에게 준 비단 주머니 속 계책 때문에 되치기 당해 그대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더 얄미운 것은 제갈량이 유비의 병사들을 시켜 자신과 동오 병사들에게 다음처럼 외치게 했다는 점이다.

주유 장군의 묘책 덕에 조조를 물리쳐 안정을 얻었습니다만 어쩝니까? 장군께서는 오나라 주군의 여동생과 병사들을 잃으셔서요?
周郎妙計安天下,賠了夫人又折兵。

이 말은 들은 주유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이후 얼마 뒤 숨을 거뒀다. 물론 『삼국연의』 속 내용이다.

지금 나라가 고위 공직자 자녀의 비정상적 특채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외교통상부 장관은 천하의 안정을 위한 G20 준비 수장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딸의 특채를 묵과 내지는 종용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외교부 장관 및 G20 준비 수장으로서의 지위는 물론이고 공직자로서의 청렴성에 큰 타격을 받으며 물러났다. 주유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장관의 묘책 덕에 딸 아이의 환심은 샀다만 명예도 잃고 자리도 잃고 말았구나.
长官妙计讨女儿欢心,毁了名誉又丢位。

청년 실업 문제로 고학력자들도 취업을 하지 못해 쩔쩔매는 것이 요즘 상황이다. 부모 마음에 자기 자식이 그리 될까 조바심 내고 뭔가 보탬이 되려는 마음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아이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돕는다면 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좌전左傳∙은공3년隱公三年』조의 내용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식을 가르칠 때 나쁜 것에 물들지 않고 바르게 가도록 해야 한다. 교만, 사치, 음탕, 방탕은 절대 피해야 하며 만약 여기에 물든다면 그것은 너무 감쌌기 때문이다.
愛子,教之以義方,弗納於邪。驕奢淫逸,所自邪也。四者之來,寵祿過也。

부모로써 쉽게 고기를 낚아서 살을 발라 주고 싶겠지만 사회에서 강인하게 클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홍루몽紅樓夢』 제96회에도 나오지 않던가?

더 강하게 크길 바란다.
恨鐵不成鋼。

부모로써 자식이 험난한 사회 생활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강인하게 키워줘야 함은 물론이요, 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목표한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강철처럼 연마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

하지만 한 국가기관의 수장으로서, 더구나 대외 업무를 대표하는 외교통상부 장관이 정시모집도 아닌 특차모집에 자신의 자녀를 지원하도록 하고 관계 법령을 어기며 합격을 시켰다. 가정 내 아버지로써 모범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자기가 속한 조직 내에 분열을 가져와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조직의 수장된 자로서의 본분을 다 못했는데 그 아랫사람들은 어떻게 통솔할 것인가?

『논어論語∙자로子路』편을 보면

행동이 바르면 사람이 절로 따르고 그렇지 못하면 명령을 해도 안 따른다.
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雖令不從。

이라고 했다. 그랬기에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이 아끼던 마속馬謖을 베었고 숱한 명장들은 진두陣頭에서 부하를 통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조사결과, 서류 및 면접 전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교통상부 내 관계자들이 미리 합격용 일방통행로를 닦아놓았다고 한다. 수장의 처신이 바르지 않지만 알아서 따른 것이다. 고전 속 가르침에 역행하는 이런 세태를 보며 인사권자에게 알아서 기어야 하는 ‘을’의 처지를 한탄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서漢書∙동방삭전東方朔傳』에 나오듯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듯이 너무 완벽을 기하면 따르는 이가 없어진다.
水至清則無魚,人至察則無徒。

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 맑고 완벽하지 않도록 보여 우리가 친근감을 느끼고 따를 수 있도록 하시는 배려라고.”라며 자조 섞인 한탄을 할 수밖에 없을까?

모든 일은 족함을 알아야 행복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이미 한 공직기관의 수장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 적잖은 부를 가졌다면 자녀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처럼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자세요, 조직 내 활력을 불어넣을 줄 아는 수장의 자세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족함을 모르는 것만한 해로움도 없고 탐욕만한 죄악도 없다.
禍莫大於不足,咎莫大於欲得。

라는 말이 있다. 족함을 모르고 탐욕을 부린다면 세상에 패가망신敗家亡身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에 사건이 터진 외교통상부 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도가 나간 후 각 커뮤니티 사이트, 트위터 등에는 기업, 기관 등에 만연한 내부자 인사거래 사례가 폭주를 하였다.

한 사람이 성공하면 주변 사람도 덕을 본다. 왕충王充 『논형論衡∙도허道虛』
一人得道,雞犬升天。

성공한 사람의 덕을 보고 신분 상승의 고속열차에 무임승차하려는 현상이 만연한 것이다.

20세기 세계는 지구촌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WTO 체제가 성립되면서 자유무역의 거센 바람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조직 사회에는 보호 무역의 장벽이 높이 드리우는 듯하다. 계층간 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굳어지면서 계층간 이동이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여론의 힘에 밀려 퇴임했듯이 대다수의 국민들은 상류 사회, 고위 공직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주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론을 막는 것은 무엇보다 어렵다(防民之口,甚於防川, 『국어國語』).

국민이 되었든 직원이 되었든 이들은 물과도 같다. 이들이 “배를 띄울 수도 뒤집어 침몰시킬 수도 있다.(水能載舟,亦能覆舟.『순자荀子∙애공哀公』)”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명군明君으로 남을 수 있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씨 하나가 들판을 태우는구나. 『상서尚書∙반경상盤庚上』
火之燎於原,不可向邇。

모택동毛澤東이 혁명의 조그마한 불씨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외친 이 말처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인사 부패 현상이 더욱 거센 기세로 퍼져나갈지 아니면 이번 사건이 부패 근절의 시발점이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병준 중국어 통번역, 강의 프리랜서 bjha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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