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신한 사태, 왜 일본서 … 국내 주주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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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주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의견을 전달할 통로는 찾을 수 없군요.”

신한금융지주 내분 사태의 장본인 ‘3인방(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재일동포 주주와 사외이사들에게 각각 입장을 설명한 9일, 국내 한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털어놓은 얘기다. 이번 사태의 향방을 둘러싼 최대 관심사는 재일동포 주주들이 과연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것이냐로 쏠리고 있다. 모처럼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정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주주들이 온당한 대접을 받는 반면, 국내 주주들은 ‘찬밥 신세’다. 신한지주의 주주 구성을 보면 외국인 투자자 42%, 재일동포 17%, 국내 투자자 41% 등이다.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이사회 멤버(사외이사)의 구성은 재일동포 추천 4명, 외국인으로 1대 주주인 BNP파리바 추천 1명, 그리고 내국인 4명 등이다.

그런데 신한 사태 이후 사외이사들의 행동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재일동포와 외국인 측 사외이사들이 사태 파악과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데 비해, 내국인 사외이사들은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시장에선 라 회장 측의 추천으로 사외이사가 됐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국내 주주들의 권익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무시돼도 그만인가.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신한지주의 주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국민연금이 신한지주 주식의 6%를 갖고 있다.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등 각종 국내 펀드의 지분을 합하면 20%가 넘는다. 신한지주가 잘못되면 국민의 노후생활 자금이 훼손된다. 이미 1조원이 넘는 주식 가치가 증발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에게 해법을 물어봤다. A자산운용사의 최고운용책임자(CIO)는 “오히려 이번에 곪아터진 게 잘된 것 같다”며 “신한을 포함한 주인 없는 상장회사 전반에 대해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방안을 찾는 논의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에서도 금융위기를 자초한 대형 은행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에게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고 소개했다.

B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은행이 펀드를 팔아주는 ‘갑’의 위치에 있어 운용사들이 선뜻 주주로서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며 “연기금과 펀드·변액보험 등 기관투자가들이 연합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강화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주주협의회’ 구성 및 사외이사 추천 방안이 관심을 끌고 있다.

국민연금 전광우 이사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투자한 회사의 경영진과 대화할 채널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공동으로 ‘주주협의회’를 구성하는 한편, 사외이사도 공동 추천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단독 의사결정이 불가능해 정부 개입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고, 다른 기관투자가들은 거대 은행 등에 개별적으로 맞설 때 부닥치는 힘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구재상 사장은 “시간을 갖고 함께 논의해볼 만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김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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