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폭우·폭염 … 3중고 농민들 가을 한숨 깊어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의 한 주민이 이달 초 태풍 ‘곤파스’ 영향으로 땅에 떨어진 사과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추석을 앞둔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연합뉴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예년 같으면 결실과 소득의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인데…올해는 명절이 싫습니다. 오히려 속만 시커멓게 타 들어 갑니다.”

9일 농민 윤태은(69·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씨는 과수원의 빈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3만3000㎡의 농장에서 배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태풍 ‘곤파스’가 지나가면서 피땀 흘려 가꾼 배 60~70%가 떨어졌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 화성시 송산면 일대 과수 농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포도의 경우 70~80%가 익은 시점이어서 광합성 작용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당도가 떨어지고 때깔마저 잃어 버렸다.

사과 생산지로 유명한 충남 예산군에서는 태풍으로 과수 농가의 90% 이상이 피해를 봤다. 예산군에서는 1200여 농가, 1129㏊에서 사과농사를 짓는다. 이들 중 1000㏊에서 낙과 피해가 있었다. 금액으로는 100억원 이상이다. 권오영(55·예산군 응봉면)씨는 “강풍으로 조생종 사과 품종은 80% 이상 떨어지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등 큰 피해를 봤다. 보상이라곤 3000㎡당 농약 값으로 46만원을 지원한다니 농민을 두 번 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들녘에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간다. 수확기를 앞두고 닥친 강풍, 폭우로 추석 명절을 목표로 출하 시기를 조절하던 과일이 큰 피해를 봤다. 여기에 쌀값 하락 전망, 원인 모를 가축병까지 돌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제평야에서 25필지, 10㏊의 농사를 짓는 서창배(45·전북 김제시 월촌면)씨는 “쌀값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수확기가 다가오는 게 두렵다” 고 말했다.

지난해 수매가는 벼 가마(40㎏)당 4만5000~4만7000원, 하지만 올해는 가마당 5000원 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들면 ‘홍수 출하’돼 가격이 뚝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벼농사의 예상 소출량은 ㏊당 5.3t으로 사상 최대 풍년을 기록한 지난해(5.31t)와 비슷하다. 총 생산량은 473만t으로 추정된다(본지 9월 1일자 E2, E3면). 보관창고가 모자랄 정도로 쌀의 재고물량이 넘쳐 가격은 지난해보다 10%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씨는 “농약·비료 등 영농자재비는 10% 이상 올랐는데 쌀값은 반대로 뒷걸음치고 있다.

축산농가는 지난달부터 ‘주저앉는 소’가 잇따라 발생해 불안에 떨고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47농가에서 소 52마리가 뒷다리 마비와 고열, 유산 등 증상을 보여 땅에 묻었다. 전남에서도 곡성·순천·구례 등 100농가에서 121마리의 소가 주저앉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경남에서도 올여름 비슷한 증상으로 23마리를 매몰 처분했다.

전문가들은 올여름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면서 소가 탈진해 쓰러지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경남 함안군 농민 이모(54)씨는 “주저앉는 소의 경우 국가전염병이 아니어서 농가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마리당 300여만원씩 1200만원 이상 손해 봤다”고 하소연했다.

장대석 기자, [전국종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