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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똑똑이 가려낼 평가 시스템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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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나 취약계층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금융회사의 취약한 신용 및 미래 순현금흐름 평가능력이 전당포식 담보 위주의 대출관행을 고착화시켰다. 기업대출 때 대표이사 개인의 연대보증을 중복적으로 요구하는 무리한 관행은 우리나라에서만 지속되고 있다. 담보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은 금융회사에서 차입하기가 쉽지 않으며 과도한 금용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대졸자 취업시장에서 우수인재 선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조직들은 ‘간판’ 위주로 직원을 채용한다. 우수인재 평가 능력을 보유한 조직이 늘어야 능력 위주로 뽑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도 벤처기업의 기술과 미래 순현금흐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성공확률이 낮은 벤처기업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면 투자위험과 미래 기대 현금흐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교육현장의 교원평가, 수학능력평가, 그리고 학교평가 등도 학생이나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대학 당국 등 수요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평가지표와 정보를 제공해 주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수요자가 학생이나 학교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면 현재의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 출신 중심의 학생선발 관행이 고착화되기 쉽다.

21세기 들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데는 단기 업적 중심의 평가가 한몫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단기 투자이익 중심의 기업평가가 자리를 잡았다. 이에 따라 기업구성원들은 협력기업과의 장기적 거래관계 개선보다는 단기 업적을 보다 많이 내기 위해 납품단가를 엄격하게 관리하거나 글로벌 소싱을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대·중소기업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국내 납품기업들의 자립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현재 임직원들의 성과급 평가체계상 그러한 비용절감 노력이 승진이나 성과급 보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 구축은 무임승차 문제나 타인의 재산권 침해 방지에 기여함은 물론 취약계층이나 약자의 보호에 중요한 것임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군주론의 저자인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은 실제 유능한 사람보다 유능해 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사회에서는 유능해 보이는 사람이 승진도 빠르고 연봉도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고 제대로 평가하는 데 시간과 자원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평가 시스템이란 없다. 다만 정보왜곡이나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평가시스템을 혁신해 합리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선진화는 물론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