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무화과, 꽃잎 한 입 베어 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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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그런데 요즘 나오는 무화과는 ‘무화과 나무 그늘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던’ 그 재래종이 아니다. 1970년대 일본에서 건너온 외래종 무화과가 국내에 터를 잡고 나오는 것.

국내산 무화과의 대부분은 영산강 하구, 바다를 접한 전남 영암에서 자란다. 전국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특히 하우스 재배가 아니라 노지산 무화과는 영암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08년엔 ‘영암무화과’가 지리적 표시 농산물 제43호로 등록됐다. 영암 무화과 밭에 다녀왔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영암 삼호읍에서만 잘 자라는 무화과

무화과는 꽃을 품은 과일이다. 한입 베어 물면 은은한 꽃향기가 입안에 퍼진다(위, 아래).

무화과는 영암군 삼호읍의 대표 작물이다. 600여 농가가 300㏊에서 무화과 농사를 짓는다. 전체 농가의 50%, 땅의 10%에 해당한다. 삼호는 원래 무화과로 유명했던 곳은 아니다. 영암무화과 클러스터사업단 김종팔 단장은 “원래 삼호는 계륵 같은 땅이었다”고 말했다. 뭘 심어도 딱히 잘 안 되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73년 지금 생산되는 무화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종인 ‘마쓰이도우핀’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박준영 전남도지사의 형인 고 박부길 당시 삼호농협조합장이 이를 삼호읍 일대에 심어 보기로 했다. 그 전까지는 재래종인 ‘봉래시’가 무화과의 거의 전부였다. 김 단장은 “아직까지 전라도 토박이들은 무화과라고 하면 봉래시만 먹는다”고 말했다.

봉래시는 수확을 해 이득을 남기기 힘든 과일이었다. 일단 과실이 9~11월 사이에 맺히는 만생종이다. 크기도 작다. 박 당시 조합장은 8월 초부터 수확할 수 있고 과육도 풍부한 마쓰이도우핀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상하게도 이 품종은 삼호읍에서만 잘 자랐다. 인근 미암면·학산면에서는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았고,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김 단장은 “삼호에서만 무화과가 잘 자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삼호읍은 이후 70년대 말 영산강 하구둑 간척사업이 이뤄져 농경지가 넓어지고 용수의 공급이 원활해져 풍요로운 지역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면서 가뭄에 약해 용수가 풍부해야 하고 햇빛을 많이 받아야 잘 자라는 무화과에 적합한 땅으로 변해갔다. 90년 약 10㏊에 불과하던 무화과 재배 면적은 올해 300㏊까지 늘었다.

껍질 벗겨 먹어도 되고 껍질째 먹으면 더 좋고

무화과는 뽕나무처럼 이리저리 얽힌 나뭇가지에서 이파리 하나에 열매도 하나씩 맺히는 특이한 과일이다. 아니 사실 꽃이다.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하게 커지고 그 안에 수많은 작은 꽃들이 숨어 있다. 무화과의 끄트머리는 꽃처럼 살짝 벌어져 있다. 그래서 “무화과가 아니라 은화과(隱花果)라고 부르자”는 이도 있다. 영암에서 나는 무화과종인 마쓰이도우핀은 꽃잎들이 속을 채워서인지 열매 치고는 굉장히 무른 편이다. 무르기가 홍시나 바나나쯤 된다. 맛도 감과 엇비슷하지만 꽃잎처럼 달콤한 향이 입 안에 남는다.

무화과를 그대로 얼리면 아삭한 셔벗이 된다.

무화과는 따고 난 뒤 이틀이면 물러버린다. 정말 신선한 무화과를 먹으려면 영암으로 직접 찾아가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택배도 아이스박스에 배달되기 때문에 받자마자 바로 냉장고에 넣으면 일주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말려서 먹기는 힘든 과일이다. 박 단장은 “양식당에서 주로 쓰는 말린 무화과는 수입산”이라고 말했다.

무화과는 무른 과일이라 바나나처럼 꼭지부터 벗겨 먹어도 되지만 씻은 뒤 껍질째 먹는 게 더 좋다. 무화과의 껍질에는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들어 있다. 하지만 한번 씻은 무화과는 냉장 보관해도 금방 물러질 수 있어 보관할 때는 되도록이면 물을 묻히지 않아야 한다. 이미 물러진 무화과는 셔벗을 해 먹는 게 좋다. 냉동해서 먹는 무화과 셔벗은 질감이 ‘아이스홍시’와 비슷하다.

손바닥만 한 무화과 잎에 생채기를 내면 하얀 즙이 나오는데, 바로 ‘피신(ficin)’이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작용을 한다. 이 흰 즙은 무화과 껍질을 깔 때도 나오고 과육에도 들어 있다. 그래서 무화과는 고기를 먹은 뒤 후식으로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연육제로도 쓴다. 단 효과가 너무 좋은 편이라 고기를 한 시간이 넘도록 재우면 퍼석퍼석해질 수 있다.

영암무화과 클러스터사업단에서는 생과와 각종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무화과 생과 2.8㎏(24~28개)이 3만5000원. 무화과잼 570g들이 3병이 2만3000원이다. 양갱과 무화과를 첨가한 비타민류도 판매한다. 061-464-6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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