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일 부자세습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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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 승계가 부자 세습 형태로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지난 27일 관영 중앙방송(라디오) 정론(政論)에서 "수령님(1994년 사망한 김일성 주석)께서 생전에 '(혁명) 과업을 다하지 못하면 대를 이어 아들이 하고, 아들이 못한다면 손자 대에 가서라도 기어이 수행하고 말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고 공개했다.

정론은 또 "몇 해 전 경애하는 장군님(김정일 위원장)께서 일꾼(노동당 간부)들에게 '나는 어버이 수령님(김일성)의 유훈을 받들 것'이라고 말씀하시었으며 이는 내가 가다 못 가면 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가려는 계속 혁명의 사상이었다"고 보도했다.

30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A4용지 10쪽 분량의 이 방송 녹취록에 따르면 북한은 군대를 최우선시한다는 이른바 선군(先軍) 혁명을 "대를 이어서라도 가야 할 계속 혁명의 길"로 규정했다. 특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 '만경대.백두산 혁명 일가'로 규정하고 "전통이 위대하면 계승도 위대해야 한다"며 후계 문제가 이 혈통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웠다.

방송은 "혁명투사 김형직(김일성 부친) 선생님께서는 '나라의 본분을 내가 하다 이루지 못하면 아들이 계속하고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이어서라도 기어이 성취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었다"면서 김형직의 어록도 소개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과거에도 혁명계승의 필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으나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 배경과 의도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분석=이기동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권력 승계와 관련해 이번처럼 뚜렷이 3대 세습의 당위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의 후계자를 세 아들 중에서 고르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김 위원장은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장남 정남을,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차남 정철과 삼남 정운을 두고 있으며 아들 중에서 고를 경우 최근의 북한 정황으로 미뤄 차남인 김정철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다수의 북한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들은 북한이 노동당 창건 60주년(10월 10일)을 맞는 올해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 문제와 관련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관측해왔다. 전문가들은 특히 다음달 16일 김 위원장의 63회 생일을 앞둔 시점에서 후계 구도와 관련한 언급이 북한 언론에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로써 그동안 부분적으로 언급되던 제3의 후계자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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