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선댄스 영화제] '미국을 넘어 세계영화제로' 문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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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선댄스 영화제 드라마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포티 세이드 오브 블루'의 아이러 색스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파크시티(유타) AP= 연합]

미국 유타주의 파크시티. 겨울올림픽으로 유명한 솔크레이시티에서 1시간여 떨어진 이곳은 매년 1월 새로운 영화를 향한 열정으로 술렁인다.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에 맞서 독립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것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21회를 맞은 선댄스 영화제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시작돼 30일 폐막했다. 열하루 동안 장편 120편, 단편 82편이 상영됐다. 한적한 휴양도시 파크시티가 4만5000여명의 관계자로 북적댔다.

요즘의 '선댄스'는 '독립'의 상징이 아니다. 1990년대 말까지 할리우드에 맞서며 미국 영화계를 살찌우는 토대로 성장해왔으나 2000년대부터는 할리우드 메어저들의 집중적 관심을 받게 된 것. 이제 영화제의 상업성 논란은 의미가 없어졌다.

선댄스가 표방하는 정신은 세 가지 독립(Independence), 실험(Risk), 발견(Discovery)이다. 명성에 걸맞게 스타 감독도 양산했다. 코언 형제.스티븐 소더버그.토드 헤인즈.로버트 로드리게스.브라이언 싱어.마이클 무어 등이 선댄스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발굴된 모건 스펄록 감독의 다큐멘터리 '슈퍼사이즈 미'는 미국에서만 27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5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터'도 44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올 선댄스에서 달아오른 영화는 흑인들의 힙합을 소재로 한 저예산 영화 '허슬 앤 플로(Hustle and Flow)'였다. '보이즈 앤 후드'로 유명한 존 싱클톤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됐으며, 소니.파라마운트 등 할리우드 메이저마다 배급권을 따려고 치열하게 경합했다. 신인감독 크레이그 브뤼어는 조만간 스타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부문과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은 각각 현대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포티 세이드 오브 블루'(감독 아이러 색스)와 지난 50년간 미국의 군사정책을 비판한 '와이 위 파이트'(유진 재렉키)에 돌아갔다. '허슬 앤 플로'와 신체장애 운동선수의 의지를 그린 '머더볼'(헨리 알렉스 루빈)은 각각 드라마.다큐멘터리 부문 관객상을 받았다.

올해 두드러진 특징은 선댄스가 미국이 아닌 전세계를 향한 필름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월드시네마 경쟁부문을 신설했다. 각국의 드라마(극영화) 16편, 다큐멘터리 12편이 출품됐으며, 한국영화로는 박철수 감독의 '녹색의자',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가 호응을 얻었다. 업계.언론의 관심이 미국 작품에 집중됐으나 '여자, 정혜'는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기자가 '숨겨진 보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 등도 특별 상영됐다.

선댄스는 앞으로 한국영화가 북미 시장에 진출하는 지렛대가 될 게 분명하다. 한국영화는 올해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여기에서 발굴되면 미국 시장에 소개되는 길이 넓게 뚫리기 때문이다. 잠재적 가치가 칸 영화제 못지 않아 보인다. 주최 측이 월드 시네시네마 부문을 신설해 아시아 영화를 주목하고, 특히 한국영화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북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정도다. 한국영화의 지상과제인 해외개척에 선댄스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오고 있다.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사정은 마찬가지다. '독립정신'으로 성장한 선댄스가 과연 거인으로 거듭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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