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교육감 “기업 돈으로 중고생 무상 교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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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방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5월 25일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 김복만(62·사진) 울산시교육감 후보가 유권자의 구미를 바짝 당기는 공약 하나를 내놨다.

교육감에 당선되면 울산지역 모든 중·고등학생에게 무상으로 교복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유권자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신다는 심리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 포퓰리즘의 극치다.”(울산시교육청 공무원·49)

“다른 공약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이건 당장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거잖아.”(교사·46)

교육감 출마자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좋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 후보는 방송 3사 여론조사에서 교복 공약을 내놓기 일주일 전까지는 지지율 18.5%로 1위 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공약을 발표하고 이틀 뒤 28.4%로 껑충 뛰어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였고, 결국 37.4%를 득표해 1%포인트 차로 당선됐다.

#2. 김복만 울산시교육감은 1일 중·고교 신입생 교복 무상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60개에 이르는 실천계획 중 하나다. 우선 내년에는 저소득층 3600여 명에게 지급하고, 2012년부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신입생 전원에게 무상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비용은 1인당 20만원 선으로 4년 임기 동안에 총 194억원. 이 가운데 63억5000여만원을 울산지역 기업체에 떠넘기기로 했다.

김 교육감은 “대기업들에 교복 구입비를 추가 지원해 달라고 공문과 편지를 통해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공약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데 참여한 한 장학사는 “울산지역의 중·고생 가운데 35%가 대기업에서 학자금(고교의 경우 110만~12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부모가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기업이 직원 자녀 1인당 20만원을 추가 부담하는 것은 사원 복지나 기업의 사회 공헌 측면에서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울산시교육청이 거론한 H사의 한 임원은 “기업체를 봉으로 삼아 개인의 포퓰리즘을 관철하겠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만큼 자녀 교복 구입 문제로 고민하는 직원도 없을뿐더러, 회사가 교복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 투자를 늘려 고용 창출과 납세로 사회에 보답하는 게 기업 본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교육감의 공약 실천계획에는 ‘스포츠과학 중·고교 설립’ 예산 800억원 가운데 160억원도 기업체에서 지원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도 내년부터 도내 중·고등학교의 신입생 전원에게 1인당 25만원 범위에서 교복 구입비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선거공약 실천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내년 신입생 3만8330명의 경우 총 지원액이 98억5000만원으로 예산 절감을 통해 자체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매년 학교 1개씩 신설할 수 있는 예산을 불요불급한 곳에 쓴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 교육감은 2002년 심완구(민주당) 시장 시절 울산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보수파이며 민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이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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