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이 젊어진다고 정치권 변하나, 자신의 벽 깰 수 있어야”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요즘 여의도 정가의 화두는 세대교체다. 6·2 지방선거와 김태호 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불어닥친 바람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도 궁금해하는 정치인이 있다. 기자에게도 종종 묻는다. “이정희 대표가 누구냐.” 잇단 선거 패배와 실추된 이미지로 수세에 몰린 민주노동당이 예상 밖의 ‘깜짝 카드’를 낸 게 이정희(사진) 대표다. 그는 변호사 출신에, 여성이며, 올해 41살이다. 최연소 여성 당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몸싸움 현장이나 본회의장 의장석 점거 때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난 25일은 당 대표가 된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정확히 반환점에 선 시점이기도 했다. 마침 바로 옆 국회 본청에서는 총리 인사청문회가 한창이었다.

봉천동 두부장수 딸, 학력고사 전국 수석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총리에 지명됐다.
“세대교체…, 나이가 젊어진다고 해서 정치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얼마만큼 자신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자신의 벽을 무너뜨린다? 무슨 뜻인가.
“오랜 기간 형성해온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과 생각, 그것에서 만들어진 일정한 고집이 있을 수 있다. 관건은 좀 더 많은 분들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검토해볼 수 있느냐, 비판 앞에서 얼마만큼 낮아질 수 있느냐다. 이번 개각과 김 후보자 지명이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2012년 대선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까.
“겉으로는 세대교체로 드러나겠죠. 하지만 그 밑바탕엔 물들지 않은 사람, 국민의 열기를 모아낼 수 있는 사람, 진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로 정치권이 바뀌어갔으면 하는 국민적 바람이 깔려 있을 거다. 그런 분들이라면 60대든, 70대든 무슨 문제겠나. 20대면 또 얼마나 좋겠나.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런 분들이 모여 스스로 대안을 만들고, 충분히 채워서 국민 앞에 내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고향은 어딘가.
“서울이다. 봉천동 달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두부공장 종업원이셨다. 지금도 시흥에서 두부를 만들고 계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현동 연립주택으로 이사가면서 달동네를 떠났다.”

-1986년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했는데.<
“서문여고 2학년 때까진 전교 10등 정도였다. 고3 올라가면서 ‘미쳤다고 생각하고 하자’, 그러고 한 거다. 시간을 남들보다 배 이상 써야 그만큼의 성과가 나오는 스타일이다. 하나에 몰입하면 다른 걸 잘 못한다. 그래서 대학 가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선배들로부터 구박도 많이 받았다(웃음).”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거 좋아했나.
“아니다. 나는 듣는 걸 더 좋아한다. 가슴 속에 맺혀서, 굉장히 오래 맘속에서 구르고 굴러, 입으로 내보내는 순간 이미 정리되는 수순으로 가는 시점에 보통 내 얘기를 한다.”

-남편(심재환 변호사)은 어떻게 만났나.
“96년 사법시험 3차 면접 때 저 멀리 서 있는데 눈빛이 마주쳤다. 스파크가 튀었다(웃음). 그 이후로 스파크 이론 신봉자가 됐다.”

민주당·진보신당엔 불러도 안 갔을 것

-변호사 되고 주한미군 문제에 천착했는데.
“여성·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92년 윤금이씨가 주한미군에 살해됐을 때 동두천 기지촌에 처음 가봤다. 이듬해 여름에도 자원봉사를 나갔다. 그때 복잡한 문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성매매 문제만 푼다고,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94년부터 사시를 준비하게 됐다.”

-원래 정치 꿈이 있었나.
“아뇨, 전혀.”

-정치하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냐.
“2008년 3월 2일이 민주노동당 입당일이다. 이틀 전에 비례대표 제안받고 이날 결심했다. 당시는 민주노동당이 분당 등으로 워낙 어려운 상황이라 도울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름의 의무감을 갖고 있을 때였다. 비대위 면담 때도 더 좋은 분이 계시면 꼭 그분을 모시라고 했다.”

-민주당이나 진보신당에서 똑같은 제안이 왔다면.
“안 갔을 거다. 민주노동당이었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거다.”

-기존 1세대 원로들과의 관계는.
“입당 전에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처음엔 낯설었을 거다. 내가 낯설었던 것 이상으로. 과연 저 젊은 여성 변호사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갈 수 있겠느냐, 100% 신뢰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고, 믿고 기다려주시더라.”

-당 대표 한 달 소회는.
“7월 25일 0시가 되니까 어깨가 딱 굳고 머리가 무거워졌다. 그때 생각을 했다. 깊게 생각하는 게, 넓게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찬찬히 살펴보니 당이 예상보다 안정돼 있더라. 입당한 지 2년4~5개월밖에 안 된 초선의원을 당 대표에 앉혀도 잘 운영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다. 당도 흑자재정으로 가고 있다.”

-분당 과정에서 종북주의 논란이 컸다.
“종북주의는 실체가 없다. 어떤 경향으로 확정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입증된 바도 없고 토론의 대상이 된 적도 없다. 이름이 일방적으로 붙여진 거다. 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그것 자체로 보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신념이 행동으로 표출된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단지 덧씌우기라 는 건 궤변 아닌가.
“요지는 왜 북한을 비난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당장 이 자리에서 비난해 보라는데, 꼭 비난해야 하나. 물론 북핵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강한 어조로 비판하지 않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저도, 당도 확고하다.”

북한, 꼭 비난해야 하나

-당의 강성 이미지가 부담이 되진 않나.
“밖에서 볼 때 원칙에 충실한 당이라고 생각했다. 원칙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만이 진정 유연해질 수 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며 부드럽고 친근한 당으로 이미지를 쇄신해가겠다. 당장 하반기부터 의료 문제에 집중할 거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려 큰 병 걸려도 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책임 있는 정당이 되기 위해 대안도 내놓겠다.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는 차원의 증세(增稅)가 그것이다. 마침 국가 재정 건전성이 매우 나빠진 상황이라 올 정기국회에서 증세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가 성공했다. 총선과 대선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가장 폭넓은 범위에서 야권연대를 성공시키는 게 비결이다. 그러려면 민주당이 가혹하리만큼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당장 드리는 고언은 전남에서 4대 강 문제를 풀어야 한다. 민주당이 영산강 문제에 대해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입장을 바꾸도록 만드는 게 1차 관건이다.”

-2012년 대선 출마 질문을 많이 받을 텐데.
“준비하고 있어야 되는 게 민주노동당 대표의 책임 아니겠나.”

그는 웃음이 많았다. 1시간40분 인터뷰 동안 스무 번도 넘게 웃었다. 그를 잘 안다는 한나라당 의원은 “부드러운 이미지와 행동하는 열정을 함께 갖춘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2012년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 속에서 그가 민주노동당 대표로서 얼마나 젊고 유연한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박신홍 기자

중앙SUNDAY 무료체험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