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낭랑 18세 논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성에 대해서 개방적인 덴마크는 성교육 면에서도 그 어떤 나라보다 앞서 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교육을 시킨다는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생에 해당하는 8년생 남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엄청난 내용이다.

첫째, 임신하면 생리가 그친다. 하지만 근심·걱정 따위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에도 생리가 없어지는 일이 있으므로 그것만으로 확실한 임신 여부를 알 수는 없다.

생리 예정일을 지나 2주일 뒤에 소변검사를 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산부인과 의사가 자궁을 살펴서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주일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둘째, 임신 7개월까지 태아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유산이라고 하고, 7개월부터 9개월 사이에 태어나는 것은 조산이다. 유산에는 자연유산과 인공유산 두 가지가 있다.

도저히 14세 학생들 상대의 수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내용들로, 의과대학 임상강의처럼 정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자보건법에 의해서 낙태가 불법으로 되어 있지만, 덴마크에서는 1973년부터 18세 이상의 여성이 자신의 의사로 낙태하는 것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만약 18세 이하인 경우에는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다.

강의가 끝나면 인공유산의 법률적 허용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지고 그것으로 소화되지 못한 부분은 리포트로 배정한다. 토론에서 ‘18세 이상으로 정한 것은 무책임한 인공유산을 방지한다’는 찬성론과 ‘18세 이하이더라도 섹스는 자신의 책임하에 하는 것이므로 연령제한은 부당하다’는 반대론이 나온다.

또한 12주 이내의 수술이라도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이므로 살인과 같은 느낌이 들어 싫다는 의견과 법적으로 공인되지 않으면 돌팔이 의사의 수술을 받게 되므로 모체까지 위험을 겪게 된다는 의견 등 제법 어른스러운 의견들이 백출한다고 한다.

이처럼 초등학교에서는 각 학년별로 연간 10∼30시간 성교육이 실시된다.
그들 사회라고 해서 이런 조기교육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교사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14세가 되면 벌써 남자 아이도 여자 아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성을 의식한다. 그렇다면 성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 유리하다.”

“젊은 남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섬세한 감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성교육이 그런 감정을 상실하도록 만든다면 성교육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성교육을 받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는 과거와 같은 감정의 섬세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성교육은 이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벤트 H. 크레이슨의 「소년과 소녀, 남자와 여자」란 책이다. 이것은 덴마크의 고교생들을 위한 성교육 독본으로 여기에는 남녀의 성기 도해는 물론이고, 자위의 방법이 남녀의 나체 사진을 곁들여서 설명되고 패팅의 기교에 대한 구체적 해설이 들어 있다. 심지어 콘돔을 끼우는 방법, 동성애의 사랑방법과 강간을 당하게 된 때의 처신 방법까지 세세하게 씌어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라의 남녀가 성교하고 있는 사진인데 그 생생함은 포르노와 다를 게 없다.

특히 동양인의 시각에서 볼 때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은, 잘못 저항하다가는 여성의 비명을 막는 남성의 억센 손 때문에 여성이 질식하는 사고가 있으므로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주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단 한 차례의 마음내키지 않는 성교 때문에 생명까지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강간에 대한 이런 사고는 구미권의 매우 현실적인 대처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교사라면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여성은 죽더라도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칠지도 모를 일이다.

차이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상이한 점은, 처녀인 여성이 피임을 위해 페사리를 삽입하려고 할 때 우선 처녀막이나 질의 입구에 마취연고를 바르고 처음에는 한 개, 다음에는 두 개, 세 개의 손가락을 차례로 질 속에 넣음으로써 스스로 처녀성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사라면 여학생의 처녀성은 방위해야 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덴마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교육 교재가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을 때,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때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는가’‘덴마크나 먼저 번역판을 낸 구미 각국에서 이것을 읽은 학생들의 의식이나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있는가’ 라는 추궁이 출판사측에 날아들었다. “잠들어 있는 학생들을 깨우지 말아 달라” 하는 교사들의 강력한 항의에 밀려서 결국 출판사는 그 책의 출판을 스스로 중단했다.

일본과 덴마크, 어느 나라 교육방법이 맞는 것인가? 이것을 한 마디로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두 나라의 성교육과 성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 바꾸어 말하면 문화의 차이가 극복되지 않는 한 만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성이 서구화를 지향하는 한,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의 성교육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 것이 틀림없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629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