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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만주 벌판 내달린 김정일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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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북한의 절박한 요구에서 이번 방중의 동기를 찾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후 주석과 악수하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보면 불과 3개월 만에 더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머리카락은 더 많이 빠졌고, 눈에 띄게 얼굴은 창백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수천㎞의 힘든 여정을 감행했을까.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관은 “이번 방중은 늙고 병든 김 위원장이 생전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다분히 ‘충동적 여행’에 나섰다는 느낌을 풍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린(吉林)은 내가 생활했던 곳”이라며 한 인간으로서의 수구초심(首丘初心)도 감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많은 언론이 ‘성지순례’라고 표현한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감성적 동기로만 해석하기엔 부족하다. 거기에는 치밀한 계산과 절박한 필요가 작동했다고 봐야 한다.

김 위원장이 직면한 현실을 따져보면 이해가 된다. 아버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하는데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미국과 한국은 제재의 고삐를 늦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화폐 개혁 실패 이후 대규모 홍수로 식량 문제도 걱정이다. 후계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김씨 조선’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26세로 아직 어린 정은이에게 제왕학(帝王學)을 가르칠 시간이 부족하다. 노동당 대표자회가 9월 초로 다가왔으니 절박함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무더위가 살짝 가신 8월 26일 새벽 김 위원장이 야음을 틈타 압록강을 건널 때의 심사는 복잡다단했을 것이다. 흔들리는 전용열차에 몸을 실은 김 위원장의 안면(安眠)을 복잡한 상념들이 방해했을 것이다. 1930년대 항일운동을 위해 만주 벌판을 달렸다는 아버지를 떠올렸을까.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께서 청년 시절에 이곳 동북 땅에서 중국의 공기와 물을 마시며 항일혈전을 벌였다”고 김씨 집안과 만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만주는 더 이상 낭만의 땅이 아니다. 3대 후계체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권의 안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경제 안정을 절실히 요한다. 취약한 정권이 유일하게 기댈 곳은 중국뿐이다. 그중에서 국경을 맞댄 중국 동북3성과의 경제 협력은 북한 체제 안정을 위한 경제발전 측면에서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식 개혁·개방의 바람이 몰아닥친 만주 벌판이 천지개벽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했다. 후 주석의 충고대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개방과 대외 협력이 불가피하다. 아버지가 말달릴 때의 황량하던 만주가 아님을 김 위원장은 제대로 깨달았을까. 그는 만주에서 정말 마지막 희망을 봤을까.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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