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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호 교수와 함께 둘러본 외암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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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70여 곳 옛집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옥의 미』를 펴낸 공주대 서정호 교수가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건재고택을 둘러보고 있다. [조영회 기자]

서정호 교수(49·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는 최근 『한옥의 미』(1, 2권·경인문화사)를 펴냈다. 수년에 걸쳐 전국 70여 곳 한옥을 계절마다 찾아가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고, 또 마음에 담아 책으로 냈다.

“외암마을의 특징은 돌담길이다. 절대 높게 올리지 않는다. 양반이나 상민이나 같은 돌담을 쌓았다. 담에 있어선 반상(班常)의 차등은 없었다.” 그는 천안 출신으로 학생 시절부터 외암마을을 자주 찾았다. 외암마을 바깥 길로 접어드니 한 주민이 밭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 교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차 한 잔 하러 왔습니다.” 그 주민은 원래 집주인 부탁으로 송화댁에 살면서 차를 재배하고 방문객에 차를 대접한다.

송화댁에 들어서자 쭉쭉 뻗은 소나무가 정원 한쪽에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다듬지 않은 흙길이 사랑채로 이어졌다. 서 교수는 “좀 전에 다녀온 건재고택 정원은 예쁘고 여성스럽지만, 송화댁은 정원을 애써 꾸미지 않아 투박하지만 그 건강한 멋이 으뜸”이라고 말했다. 앞 마당을 가로질러 흐르는 좁은 냇물이 자연과 집이 하나임을 알려줬다.

서 교수는 책에서 “(이는)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는 주인의 마음을 드러낸다”며 “소나무를 마음껏 보고 가슴으로 품으며 산다”며 그 집주인을 부러워했다.

최근 펴낸 『한옥의 미』(1, 2권·경인문화사)

안주인의 기척이 났다. “옥수수 삶다 외출해 급히 돌아왔다”며 옥수수부터 살핀다.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딸이 피곤하다며 엄마를 보챈다. 좀전에 들른 건재고택과 달리 송화댁은 살아있는 느낌이 났다.

맞다. 건재고택은 분명 외암마을에서 가장 멋있는 집이지만 살림 집이 거주하지 않으니 “아, 삶의 공간이 이렇구나”하는 맛은 나질 않는다. 외암마을을 숱하게 찾았건만 건재고택 구경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 교수 덕분이다. 6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20년 가까이 이 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지난해 건재고택을 인수한 새주인이 주말은 꼭 이 집에서 지낸다고 귀띔했다. 마루에 올라 방을 기웃거려보니 어느정도 삶의 흔적이 뭍어 있었다. 서 교수가 “박제화된 옛 집처럼 처량한 게 없다. 역시 집에선 사람 냄새가 나야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가 건재고택의 세밀한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마당을 기듯이 숨어있는 저 ‘허튼(엉뚱한) 굴뚝’을 봐라. 초저녁 군불을 때면 연기가 정원에 낮게 깔리고…. 주인은 그 연기를 구름으로 여기고 신선이 된 기분을 누렸을 것이다.”

사랑채 앞 수석의 둥그런 부분에 ‘산월(山月)’이란 글자를 새겼다. 이 조그만 정원에서 집 주인은 대자연을 느끼려 했던 것일까. 서 교수 설명에 따르면 오래전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집 주인이 일본식 정원 요소를 더해 우리식 정원으로 꾸몄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보통 집 앞 마당을 시원하게 비우는데 건재고택은 기기괴괴한 소나무와 수석들이 마당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일본에서 건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전통건축학과 문화재 복원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및 한국기와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문화재 이전 및 복원 활동을 하고 있다. 수년간 자연을 벗 삼아 어울리고자 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보는 일에 몰두했다.

전통 건축물에 대해서 “부드러운 지붕선은 뒷산의 형상을 닮았고 … 경사진 곳이라 해도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집을 지었다 … 담장은 내 집을 구분하기 위한 공간 분리 역할보다는 집 전체를 아늑하게 감싼다”고 설명한다. 그는 “원형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워 한 채라도 더 모습을 잃기 전에 자료화하고 소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옥 책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요즘은 지자체들의 한옥 관광상품화 노력이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외암마을에서 10월 6일부터 닷새동안 짚풀문화제가 열린다. 아산시는 올해부터 형식적인 대형무대 행사를 모두 없애고 새끼꼬기, 이엉얹기 등 관람객 체험 위주를 문화제를 진행하기로 했다. 주민들도 외암민속마을보존회(회장 이준봉)를 중심으로 적극 참여해 마을 생활상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서 교수는 “외암마을은 주민들 생활을 직접 볼 수 있어 좋다”며 송화댁 안주인에게 자신의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다음 달 초 지인들이 내려오는데 민박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외암마을은 실제 살림 집들이 많아 아무 집이 불쑥 들어가기 힘들다”며 “그러나 마을을 보여주는데 담장 밖에서만 서성거리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서 교수는 아산 배방읍 휴대리에 국내 첫 ‘기와박물관’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건축 규제가 풀려 그가 20여 년 간 모아온 기와·옛벽돌을 조만간 일반에 선보일 전망이다.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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