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70여 곳 옛집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옥의 미』를 펴낸 공주대 서정호 교수가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건재고택을 둘러보고 있다. [조영회 기자]
“외암마을의 특징은 돌담길이다. 절대 높게 올리지 않는다. 양반이나 상민이나 같은 돌담을 쌓았다. 담에 있어선 반상(班常)의 차등은 없었다.” 그는 천안 출신으로 학생 시절부터 외암마을을 자주 찾았다. 외암마을 바깥 길로 접어드니 한 주민이 밭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 교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차 한 잔 하러 왔습니다.” 그 주민은 원래 집주인 부탁으로 송화댁에 살면서 차를 재배하고 방문객에 차를 대접한다.
송화댁에 들어서자 쭉쭉 뻗은 소나무가 정원 한쪽에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다듬지 않은 흙길이 사랑채로 이어졌다. 서 교수는 “좀 전에 다녀온 건재고택 정원은 예쁘고 여성스럽지만, 송화댁은 정원을 애써 꾸미지 않아 투박하지만 그 건강한 멋이 으뜸”이라고 말했다. 앞 마당을 가로질러 흐르는 좁은 냇물이 자연과 집이 하나임을 알려줬다.
서 교수는 책에서 “(이는)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는 주인의 마음을 드러낸다”며 “소나무를 마음껏 보고 가슴으로 품으며 산다”며 그 집주인을 부러워했다.
최근 펴낸 『한옥의 미』(1, 2권·경인문화사)
맞다. 건재고택은 분명 외암마을에서 가장 멋있는 집이지만 살림 집이 거주하지 않으니 “아, 삶의 공간이 이렇구나”하는 맛은 나질 않는다. 외암마을을 숱하게 찾았건만 건재고택 구경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 교수 덕분이다. 6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20년 가까이 이 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지난해 건재고택을 인수한 새주인이 주말은 꼭 이 집에서 지낸다고 귀띔했다. 마루에 올라 방을 기웃거려보니 어느정도 삶의 흔적이 뭍어 있었다. 서 교수가 “박제화된 옛 집처럼 처량한 게 없다. 역시 집에선 사람 냄새가 나야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가 건재고택의 세밀한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마당을 기듯이 숨어있는 저 ‘허튼(엉뚱한) 굴뚝’을 봐라. 초저녁 군불을 때면 연기가 정원에 낮게 깔리고…. 주인은 그 연기를 구름으로 여기고 신선이 된 기분을 누렸을 것이다.”
사랑채 앞 수석의 둥그런 부분에 ‘산월(山月)’이란 글자를 새겼다. 이 조그만 정원에서 집 주인은 대자연을 느끼려 했던 것일까. 서 교수 설명에 따르면 오래전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집 주인이 일본식 정원 요소를 더해 우리식 정원으로 꾸몄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보통 집 앞 마당을 시원하게 비우는데 건재고택은 기기괴괴한 소나무와 수석들이 마당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일본에서 건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전통건축학과 문화재 복원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및 한국기와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문화재 이전 및 복원 활동을 하고 있다. 수년간 자연을 벗 삼아 어울리고자 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보는 일에 몰두했다.
전통 건축물에 대해서 “부드러운 지붕선은 뒷산의 형상을 닮았고 … 경사진 곳이라 해도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집을 지었다 … 담장은 내 집을 구분하기 위한 공간 분리 역할보다는 집 전체를 아늑하게 감싼다”고 설명한다. 그는 “원형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워 한 채라도 더 모습을 잃기 전에 자료화하고 소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옥 책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요즘은 지자체들의 한옥 관광상품화 노력이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외암마을에서 10월 6일부터 닷새동안 짚풀문화제가 열린다. 아산시는 올해부터 형식적인 대형무대 행사를 모두 없애고 새끼꼬기, 이엉얹기 등 관람객 체험 위주를 문화제를 진행하기로 했다. 주민들도 외암민속마을보존회(회장 이준봉)를 중심으로 적극 참여해 마을 생활상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서 교수는 “외암마을은 주민들 생활을 직접 볼 수 있어 좋다”며 송화댁 안주인에게 자신의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다음 달 초 지인들이 내려오는데 민박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외암마을은 실제 살림 집들이 많아 아무 집이 불쑥 들어가기 힘들다”며 “그러나 마을을 보여주는데 담장 밖에서만 서성거리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서 교수는 아산 배방읍 휴대리에 국내 첫 ‘기와박물관’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건축 규제가 풀려 그가 20여 년 간 모아온 기와·옛벽돌을 조만간 일반에 선보일 전망이다.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