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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7일 당 대회 전 ‘정은 시대’ 열려고 강행한 여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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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중국 지린성 창춘시 난호빈관에서 27일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핵심 회담 의제는 ‘김정은 후계체제 인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 5월 7일 김(왼쪽) 위원장과 후 주석이 베이징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건배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중국 지린성 창춘에 머물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귀국길에 오른 28일 청와대 핵심 인사와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인 3남 김정은(28)이 이번에 동행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26일 지린에 도착했을 때 김정은이 동행한 것으로 봤다. 그날 위원(毓文)중학교, 베이산(北山)공원 등 김일성 주석의 ‘항일 유적지’를 방문한 점이나, 그 학교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 같은 여러 정황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목격된 것은 없었다.”

위원중학교는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1927년부터 2년 동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학습했고, 베이산공원 역시 항일운동을 펼쳤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김 위원장 일행의 방문 때문에 휴교한 위원중 재학생들은 인터넷에 ‘큰 뚱뚱이(김정일)가 작은 뚱뚱이(김정은)를 데리고 온다’는 얘기들을 올려놓았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가 아들의 미래를 위해 기획한 것인가.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대하려는 9월 초 당 대표자대회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후계 체제를 확고하게 해주고자 하는 게 이번 방중 행보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9월 초 언제 당 대표자대회가 열리나.
“북한 정권수립일(9·9절)도 있으니, 6·7일로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

-그렇다면 중국의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김정은의 만남이 중요
하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시 부주석이 김정일 위원장 부자를 만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시 부주석과 김정은의 면담 여부에 관해 뭐라 단언하기 힘들다. 중국 지도층 인사 중 누가 지린·창춘으로 왔는지 여러 콤비네이션(조합)이 있을 수 있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정상회담은 북한이 중국과 외교적으로 밀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파악해야 하나.
“한국·미국과 각을 세우려 해도 그렇고, 북한이 현재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지 않나. 중국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중국으로선 북한의 체제 안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급변사태가 왔을 때 그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지난 5월처럼 중국이 북한의 3대 권력 승계를 인정하면서 개혁·개방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27일)에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겨가면서까지 북한을 감싸주는 중국 입장에서 그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급하게 진행됐다는 느낌은 있지만 방문의 내용과 형식에 관해 양국이 상당히 조율했을 것으로 본다.”

26일 새벽 김정일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중국 국경을 넘은 이후,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의 반응은 ‘급작스럽다’ ‘뜬금없다’였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놓고 떠난 터라 ‘황당하고 어이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 방문 사흘째,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이번 방중은 김정은 후계체제 확립 행보’라는 분석으로 결론을 낸 분위기다. 지난 5월 초 베이징을 찾은 지 석 달도 안 돼 중국행을 단행한 데는 중국으로부터 후계 승인과 경제지원을 받는 한편 천안함 사태 이후 거세진 국제 사회 압박에 대처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김경희가 오빠 집무시간 조절
정부 인사들은 베이징이 아닌 창춘에서 정상회담을 한 이례적인 격식에 대해 “초조하고 서두르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얘기다. 고위 소식통은 “지난해 8월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뒤 술과 담배를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2008년 뇌출혈 후유증에다 당뇨·고혈압·심장병을 앓고 있는 김 위원장이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후계문제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해 6월 이후 김 위원장의 지방 시찰 때마다 동행하고 있는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이 오빠인 김 위원장의 집무 시간을 하루 수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이번 중국 방문을 마지막 방중으로 여기고 중국 지도부와의 회담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정일 위원장은 80년대 말 동유럽 독재체제의 말로를 지켜봤다. 그래서 매제인 장성택을 지난 6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시켜 김정은 시대의 후견인 역할을 맡기는 등 가족 통치를 강화했다. 이번 중국 방문 포인트도 ‘혁명 혈통’을 강조해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과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지난해 11월 화폐개혁 이후 북한 경제가 엉망인 마당에 압록강 주변을 비롯한 수해 피해지역도 확산되고 있다. 90년대 중반이나 2003년보다 수해 피해 규모는 작지만 내부 충격은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압록강 국경지역 주민들은 대중 교역으로 시장 경제를 경험했고, 다른 지역보다 바깥 세상의 소식에 민감하다. 북한 지도부가 이례적으로 유엔에 수해 복구 지원을 요청하고 김 위원장이 피해 수습에 나섰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도 주민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후계 세습 앞서 북·중 관계 회복 시도
후진타오 주석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때 의전 측면에서 수도 베이징이 아닌 창춘으로 찾아가 만나는 파격적인 배려를 했다. 북·중 결속이 강해지면서 한·미·일 대 북·중 대치구도가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북·중 관계에 정통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계속된 북·중 관계의 이상기류가 오히려 김 위원장을 초조하게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천안함 사태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감싸면서 북·중 혈맹을 과시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물밑으로는 천안함 이후 양국 관계가 상당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 5월 초 북·중 정상회담. 김 위원장이 후 주석에게 “천안함은 북한과 무관하다”고 밝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소행’을 말해주는 사실이 나오면서 중국 측이 상당히 당혹하고 분노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중국이 국제역학 구도를 감안해 유엔에서 북한을 감쌌지만 그 자체도 유쾌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으로선 조만간 미국이 대북 제재 리스트를 발표하는 등 대북 압박을 본격화하기 전에 대중 관계를 복원한 뒤 당 대표자대회를 치러야 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김정은을 데리고 가 중국 차기 지도부와 상견례를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 자신이 83년 후계자로서 베이징에서 덩샤오핑을 만나 ‘후계 신고식’을 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후계문제에 관해 중국 측 승인을 얻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담 뒤 양측은 ‘세대를 넘어서 변치 않는 우호협력’을 발표했지만, 중국은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얘기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후계 문제를 적극 지지한다고 할 수 없다. 3대 세습이란 게 사회주의 기본 노선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향후 출범할 김정은 체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중국은 김 위원장의 기대에 맞게 호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태와 수해 확산 이후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더 커진 현실을 감안해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좀 더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을 공산이 있다. 다만 5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김 위원장에게 요구했듯, 중국이 지지하는 장성택 부위원장과 김정은 체제에 대해 협력을 약속하면서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28일 귀국 전 창춘의 산업시설을 둘러본 것도 이런 흐름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대화 포기한 것은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을 위해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베이징으로 간 것은 미국에 대한 북한식 불만 표출이다. 이후 미국과 각을 세우며 친중 일변도 정책을 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후계체제가 자리 잡히는 기간 동안 중국에 기대 몸을 움츠리고 한·미에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지만 이것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궁극적 목적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인 만큼 미국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6~7일 제3차 노동당 대표자대회를 통해 후계 구도를 분명히 한 다음, 9일 북한정권 수립일(9·9절),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5돌 등 내부 행사를 거치며 체제 결속을 강화한 뒤, 대미 대화 무드를 조성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중국으로부터 후계 확립에 필요한 정치·경제적 지원을 얻은 다음, 미국과 대화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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