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중에도 노벨상에 가까운 과학자 몇 명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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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06면

ASC에 참가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 일본의 고바야시(왼쪽) 교수와 스위스의 에른스트 교수가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있다. [ASC 제공]

18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간) 인도 뭄바이 포포인츠 호텔 1층 비즈니스룸에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마주앉았다.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를 개발한 공로로 1991년 화학상을 받은 스위스의 리하르트 에른스트(77) 교수와 자연계에 좌우대칭 파열의 기원을 발견한 공로로 2008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마코토 고바야시(66) 교수다. 그들은 2010 ASC(Asian Science Camp)에서 아시아의 청년 과학도를 위한 강연을 하기 위해 인도에 왔다. 두 사람에게 몇 가지 주제를 던졌다. 두 석학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기대했지만 각자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 그쳤다.

노벨상 수상 에른스트고바야시 교수가 말하는 노벨상

-사람들은 노벨상 수상자 하면 천재를 떠올린다는데요.
고바야시=“(눈 동그랗게 뜨며) 으응?(웃음) 전 중·고등학교 땐 특별한 학생이 아니었어요. 성적도 그리 좋진 않았죠. 다만 풀기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있었죠. 대학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일본도 한국처럼 어릴 땐 외우는 공부가 많아요. 하지만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선 자유롭게 토론도 하고 상상하면서 좀 더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요.”

에른스트=“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릴 때부터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 잘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방법은 간단해요.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과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에른스트=“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어요. 삼촌이 화학자였는데 그래서 집에 실험도구들이 많았죠. 덕분에 이것저것 실험을 많이 해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꽤 위험한 실험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집도 나도 무사했지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과학을 시작했어요.”

고바야시=“고등학교 때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란 책을 읽었는데 과학을 설명하는 방법이나 표현이 교과서하고 완전 달랐어요. 그 책을 계기로 물리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며 매력을 느껴 그때부터 과학에 빠진 것 같아요.”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습니까.
에른스트=“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스코틀랜드를 지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기장이 나한테 오더니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며 축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알게 됐죠. 잠시 후에 기자들한테 전화가 오기 시작했죠. 그러다 희한한 악센트를 가진 사람의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비행기라 통화상태도 좋지 않고 해서 그냥 끊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위스 대통령 전화였죠.”

고바야시=“저는 일본에서 직접 전화를 받았어요. 퇴직한 후라 편하게 쉬고 있었는데 노벨상 위원회라고 해서 깜짝 놀랐죠.”

-시상식장에서 짧은 연설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들었습니다.
에른스트=“시상식 때 난 과학자의 책임에 대해 얘기했어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단 걸 강조했죠. 근데 평소에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턱시도를 입고 단상에 서니까 어색하고 스스로 우습단 느낌이 들어서 혼났어요. 집에 턱시도가 없어서 빌려 입은 건데 바지랑 소매가 짧아서 더 우스꽝스럽게 보였죠.(웃음)”

고바야시=“어? 나도 빌려서 입었는데…(웃음) 그래도 저는 스웨덴에 도착해서 사이즈 잰 다음에 빌렸어요. 저도 만날 연구실에서 편한 옷만 입다가 턱시도를 입으니까 움직이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그날 수상소감 연설을 할 때 일본 물리학의 역사를 소개했어요.”

-노벨상을 받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고바야시=“큰 변화가 생긴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저 같은 경우엔 연구실에서 퇴직한 다음 상을 받아서 퇴직 후에 편안히 있다가 갑자기 다시 바빠졌다는 것?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상을 받은 후에도 똑같이 연구하고 논문 쓰고, 그렇게 지내요.”

에른스트=“1991년 상을 받고 98년에 퇴직했는데 퇴직하기 전까지는 다른 연구자랑 일하는 건 똑같았죠. 굳이 변화라면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죠. 오히려 큰 변화는 퇴직 후에 생긴 것 같아요. 퇴직한 동료들을 보면 보통 정원을 가꾸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저는 지금처럼 전 세계로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살고 있잖아요.”

-노벨상은 수상자뿐 아니라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에도 큰 경사지요.
에른스트=“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편이에요. (스위스 역대 노벨상 수상자 29명) 그래서인지 굉장히 큰 뉴스이긴 하지만 노벨상에 크게 연연하는 것 같진 않아요. 물론 수상자로선 크나큰 영광이지요.”

고바야시=“일본에선 사회적으로 굉장히 각광받아요. 아주 큰 뉴스죠. 그 때문에 가끔은 너무 과도하게 노벨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어요. 그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평화상을 제외하고는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 분야 수상자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른스트=“누구라고 밝힐 순 없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인 중에 노벨상에 가까운 과학자가 몇 명 있어요. 노벨상을 받으려면 일단 연구자한테 자유를 주고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해요. 성과를 따지기 전에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죠. 가장 중요한 건 과학자들이 한국 안에서만 얘기하지 말고 국제무대로 나가야 해요.”

고바야시=“나도 동의해요. 특히 국제무대로 나가라는 조언은 일본에도 해당되는 거죠. 저는 정부가 노벨상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정부에선 빨리 노벨상 수상자를 갖고 싶은 생각이 있겠지만 과학자는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아요. 일단은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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