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면담 불발 … ‘카터 드라마’ 2탄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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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7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석방된 아이잘론 말리 곰즈와 만나고 있다. 1994년에 이은 두 번째 평양 방문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곰즈와 함께 북한을 떠나 28일 오전 3시(현지시간 27일 오후 2시)쯤 보스턴 로건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더 이상 지미 카터의 드라마는 없었다. 1994년에 이은 두 번째 평양 방문에서 또 한 번의 한반도 긴장 해결사를 자처했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노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행으로 별 성과 없이 끝났다. ‘플러스 알파’ 없이 북한 억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에 만족해야 했다. 카터는 27일 오전 곰즈와 함께 평양을 떠나 곰즈의 고향인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로건 공항으로 향했다. 2박3일간의 평양 체류였다.

카터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에도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을 통해 대결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그 때문에 이번 방북은 곰즈 석방이라는 인도주의적 임무의 형식을 띠었지만, 그게 전부라고 믿는 사람은 적었다. 줄곧 “카터의 방북은 대북정책 기조의 변화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오바마 정부도 향후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걸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이 무산됨으로써 빛을 잃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터에 대한 홀대가 의도적인 대미 메시지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개인자격이라지만 오바마의 친서도 가져오지 않고 방북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이런 실망 때문인지 필립 크롤리 국무부 차관보는 “카터 전 대통령의 인도주의적 노력에 사의를 표한다”면서도 “카터의 방북은 사적인 임무였으며, 미국 정부가 이번 방북을 주선하지 않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이를 두고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기대한 카터는 북측의 홀대에 실망했을 수 있지만, 미국 정부로선 곰즈를 석방시킨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체면이 깎인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전직 대통령이 당한 냉대에 대한 ‘불쾌감’을 공유하는 분위기다. 워싱턴의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보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대북 압박을 계속해 나간다는 기존 정책기조를 유지할 게 틀림없다. 이럴 경우 한·미와 북·중 간 결속이 더욱 공고해짐으로써 양 진영 간 대결구도도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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