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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돈도 벌고 이름도 날리는 수상한 좌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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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좌파들의 반항
로버트 미지크 지음
서경홍 옮김, 들녘
295쪽, 1만2000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보수진영을 풍자한 영화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는 엔터테인먼트 시대의 물결을 썩 잘 타는 기회주의적 좌파다. 이 책에 따르면, 빈민을 위한 구원투수인 듯 하지만 “예능에 강한 계급투쟁가”답지않게 200만 달러짜리 호화 아파트에 산다. 영화계만이 아니라 팝음악에도 좌파의 지분이 있다. 이라크전 반대를 노래하는 폴리트 팝(polit-pop), 즉 정치성향의 팝음악이 인기차트 앞자리를 오르내린다. 힙합과 랩을 하는 비스티 보이즈, 퍼블릭 애너미 등이 각광 받자 섹스 심볼 마돈나까지 반전 메시지를 담은 ‘아메리칸 라이프’를 불렀다. 최근 10여년 새 새로운 변화다. 탐욕스러운 문화산업이 좌파 상업주의 전략을 펴는 중일까? 아니면 지배 권력에 맞서 “참된 삶, 진실된 느낌을 찾으려는 어떤 갈증”의 표현일까? 이 책은 퇴조했던 좌파가 서구사회 전면에 나선 새로운 현상 분석이다.

자본주의 세상, 세계화 물결에 저항은 학계에도 한 흐름을 형성했다.“철학계의 팝스타”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경우 독일 총리실 산하의 독일연방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고 200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공산주의자연합회의를 열었다. 인간해방을 꿈꿨던 마르크시즘은 지금도 낡지 않았다고 선언한 이들은 “공산주의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문적으로 잘난 체 하는 사람들 중 가장 혐오감을 주는 인물”(99쪽)이라는 일부 비판에도 지젝의 인기는 여전하다.

못 가진 자들을 외면하는 미국의 의료정책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이 2007년 프랑스 칸느 영화제에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총기문화·이라크 침공 등 미국 주류를 비판해온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중앙포토]

좌파 강세는 캐나다 작가 나오미 클라인의 인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세계화와 상업주의 풍조를 비판한 책 『노 로고(No Logo)』로 돈도 벌고 명성까지 챙겼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시대에 평화는 팝문화가 됐고, 반항의 제스처마저도 비즈니스로 통합됐는가? 모든 게 자본의 힘으로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냉소와 함께 정치적 대안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그만큼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21세기 좌파는 고전적 마르크시즘과 달리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국가권력 쟁취를 내세우지 않는다. 세상이 변했고 자본주의도 탄력적으로 변했지만 ‘래디컬 시크(radical shic)’풍조는 문화영역에서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래디컬 시크란 엄연히 부자이고, 주류사회에 속하는 신분이면서도 겉멋으로, 나름의 신념 아래 좌파인 양 행동하는 부류를 일컫는 용어다. 한국사회의‘강남 좌파’‘강단 좌파’ ‘딴따라 좌파’와 구조가 아주 흡사하다.

이런 좌파의 강세를 분석하는 저자의 태도는 다소 애매하다. 그걸 비판하자는 것인지, 지지한다는 얘기인지 헷갈리지만 그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서구의 래디컬 시크 풍조는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좌파·우파 구분과 상관없이 되새겨볼만하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독일의 비판적 저널리스트라는 옮긴이의 설명은 참조항목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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