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비리 불똥 … 민노 "최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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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선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이다."

민주노동당의 한 당직자는 25일 당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 장사' 사건 이후 민노당은 하루가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 처음에는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 의도"라며 강경 대응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일부 노조 간부의 부도덕함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는 논평이 나왔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민노당 홈페이지에는 당원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당 관계자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낸 논평 가운데 답글이 가장 많이 붙었는데 모두 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면서 "그간 민노당이 욕먹은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신이 버쩍 났다"고 했다.

여기에 노조 간부의 비리 사실이 연일 구체화되고 확대되면서 사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본격적인 당내 기류 변화는 2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부터 감지됐다. 회의에서 김창현 사무총장은 "노동조합 문제라고 더 이상 감쌀 일은 아니다"고 운을 뗐다. 김혜경 대표도 "노동계가 (이번 사태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며칠 사이에 신중론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진상조사단도 꾸렸다. 노동 담당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한 10여명의 진상조사단이 언론 보도 내용과 당 보고 자료 등을 검토 중이다. 26일부터는 광주에 가 일주일 동안 노조 간부 등을 만날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당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건에 발을 담그는 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견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국민이 '민노당=민주노총'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최근 며칠 사이 절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제시하기로 결론내렸다.

민노당은 실제로 당 대의원의 28%를 노동계(민주노총 출신이 대부분)에, 14%를 농민에 배정하도록 당규에 명시해놓고 있다. 민주노총의 지분이 그만큼은 된다는 얘기다.

조사 후 발표에는 자성의 목소리를 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노동계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유감을 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기는 한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이 부분이 포함될지 불투명하다는 게 당직자들의 전언이다. 당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당이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면 자칫 기존 정당들의 구태를 답습했다는 오해를 줄 수 있어 일단은 사태를 관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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