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클리닉] 정찬호 마음누리클리닉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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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진만이 부모는 모두 명문대 출신이고, 첫째 누나는 S대 사학과, 둘째 누나는 과학고 2학년이었다. 진만이는 초등학교까지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또 누나들과 비교당하기 싫어, 과도한 학습량에도 반발하지 않고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진 진만이는 소위 ‘일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다. 진만이는 교칙을 어기고 부모는 물론 선생님에게도 대들고 심지어 약한 친구를 집단구타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청소년기 우울은 반항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심각한 좌우뇌 불균형은 부모의 그릇된 교육방식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학력지상주위, 1등 지상주의가 한몫한 것. 부모는 진만이에게 ‘선행학습+심화학습’이란 채찍을 가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총알에 비유되는 좌뇌의 기능은 상위 98.7%이지만, 이 총알을 과녁에 맞춰야 하는 총에 비유되는 우뇌의 성능은 그의 절반도 안 되는 41%였다. 비유컨대 왼쪽 날개만으로 나는 새라고나 할까?

가장 먼저 서두른 건 ‘부모교육’이었다. 진만이 내면의 정서적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부모와 총 12번을 만났다. 그사이 진만이는 그동안 쌓였던 공부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가면성 우울을 떨쳐내기 위한 상담과 반 토막 난 우뇌 살리기 트레이닝을 6개월간 실시했다. 처음에는 부모나 진만이 모두 “우리 아이가[내가] 정신병자냐?”라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갔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어느덧 우울은 날아갔고 오른쪽 날개가 왼쪽 날개만큼 자라 있었다. 현재 고3인 진만이는 올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전 과목 1등급, 백분위 전국 0.8%의 성적을 받았다. 그야말로 비행청소년(非行靑少年)에서 비행청소년(飛行靑少年)으로 변한 것이다.

필자는 스스로를 ‘땜장이’라고 부른다. 학생이라는 그릇의 어느 부분에 얼마만 한 구멍이 몇 개나 나있는지 찾아, 그곳을 때워 줘 물이 새지 않도록 할 뿐이다. 그후 그 그릇에 물을 채우느냐 마느냐는 학생 자신의 몫이다.

자녀라는 그릇을 빚는 이는 다름 아닌 부모다. 자녀에게 공부라는 물만 아낌없이 따라 주는 부모는 3류다. 많은 물을 채울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빚어 주는 부모가 바로 1류 부모다. 부모로서 자녀를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먼저 살펴 보기를 권한다. 루소도 “교육의 목적은 아이를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글=정찬호 마음누리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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