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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업무용 PC, NC로 교체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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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삼성전자가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임직원들의 개인용 컴퓨터(PC)를 네트워크 단말기 (NC:Network Computer)로 바꾸기 시작했다. 저장 능력이 갈수록 커지고, 성능도 좋아진 PC를 그대로 놔둬서는 최첨단 기술 정보 등 기업 비밀의 유출을 더 이상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3일 "최근 기흥 반도체공장의 PC 100대 중 30대를 NC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해 기흥 공장을 시작으로 주요 연구개발(R&D) 부문부터 단계적으로 전산시스템을 네트워크 단말기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삼성의 네트워크 단말기는 기존 업무용 PC에 직원 인증 및 전산망 연결용 '칩'장치를 달고, 하드디스크(HDD).휴대용저장장치(USB)포트.CD롬 구동기 등 일체의 보조기억장치를 없앤 것이다. 모든 데이터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회사의 중앙 컴퓨터로 옮겨진다. 직원들은 사용자 이름(ID).비밀번호 등을 대고 인증절차를 거쳐 회사의 중앙 서버에 자신의 NC를 연결한 뒤에야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각 개인이 PC로 상품 설계를 하거나 문서를 작성한 뒤 자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다. 필요하다면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설계도 등을 통째로 복사해 밖으로 들고 나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기업 비밀 유출 사건이 대부분 이런 경로로 이뤄졌다.

그러나 NC체제로 바뀌면 이런 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NC에는 사적인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없을 뿐더러 디스켓이나 USB를 연결할 장치도 없다.

NC체제 전환은 계열사인 삼성네트웍스가 맡고 있다. 삼성전자가 기흥 공장 인근에 신축 중인 사내연구기관인 '디지털 솔루션 센터'는 아예 모든 전산망이 NC체제로 구축될 예정이다.

외국의 경우 일본 히타치가 이달 초 사내 PC 30만대를 3년 안에 모두 NC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선 일부 IT 기업이 NC시스템을 도입했거나 추진 중이다.

◆ 네트워크 단말기란=HDD 등 보조기억장치가 없는 컴퓨터다. 보통 회사의 중앙컴퓨터에 연결해 사용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컴퓨터로 작업하는 모든 데이터가 중앙 컴퓨터에 저장된다.

이원호.장정훈 기자

[뉴스분석] 중앙컴퓨터에서 모든 자료 관리…PC이용한 정보유출 근본 차단

우리나라의 첨단기술을 노리는 외국 업체가 많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38조원의 가치가 있는 40여건의 첨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뻔했다. 국내 경쟁사의 기업 비밀을 빼내려다 걸린 경우도 많다.

이런 기술 유출 시도에는 업무용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의 발달이 한몫을 하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컴퓨터에서 기업 비밀을 몰래 복사해 밖으로 빼내 가면 알아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정보저장 장치는 갈수록 작아지고, 저장 용량은 커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일부 기업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연구 기록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제도를 시행 중이나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을 일일이 뒤져가면서 감시하기가 어려웠다.

삼성이나 히타치 등은 그 해법을 네트워크 단말기에서 찾고 있다. PC처럼 정보를 디스켓이나 USB에 담아 빼내갈 수 없는 데다, 임직원들이 컴퓨터로 하는 작업의 전 과정이 중앙컴퓨터에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중앙컴퓨터 한 대만 관리하면 돼 그만큼 정보 유출을 막기 쉬워진다. 다만 대형 컴퓨터 설치 비용이 많이 들고, 직원들이 다소 불편해질 우려는 있다. 사적인 작업도 NC로 하면 기록이 중앙컴퓨터에 남기 때문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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