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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외교, 우향우 치닫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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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가 미 정치권에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는 연설 내용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지가 문제다.

우선 "부시 2기 행정부가 이란과 북한 등 인권 탄압국가들에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많다. 전쟁까지는 안 가도 경제.외교적인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이며 이라크 전쟁을 미화하려는 표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취임사에서 나온 '자유의 확산' '폭정의 종식' 등의 표현이 외교정책으로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지 다음달 2일로 예정된 국정연설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진화에 나선 백악관=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가 외교정책의 강경 선회 신호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22일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 취임사를 놓고 앞으로 미국이 또 다른 공격이나 무력시위를 할 것으로 지나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의는 그게 아니라 자유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이날 "부시 대통령의 연설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중동 등지에서 지금까지 추구해온 정책들을 더 분명하게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미 외교정책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백악관 관리의 말을 인용했다.

또 다른 행정부 고위 관리도 "(취임사는)정책의 단절이 아니다. 우리가 우향우 하는 게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신문은 전했다.

마이클 그린 백악관 안보리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은 향후 4년이 아니라 40년을 내다보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백악관을 방문했던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1일 말했다.

그린 보좌관은 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북한이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는 라이스 지명자가 북한 등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표현한 것이 대북 강경책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의기 양양한 네오콘=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날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전쟁 후유증 때문에 자세를 낮춰오다 부시 대통령의 취임연설 이후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오콘들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이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고, 부시의 취임사도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네오콘을 대변하는 잡지인 위클리 스탠더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장은 "부시의 취임사는 역사에 남을 명연설"이라고 강조했다. 또 네오콘 논객인 로버트 케이건도 "부시의 연설은 진정한 신보수주의를 담고 있다. 그 이상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 현실성 없는 연설=부시 대통령은 폭정의 종식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비민주적인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게 미 언론의 지적이다.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우즈베키스탄 같은 국가들은 미 국무부 기준으로는 인권 탄압 국가지만 대테러전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에서 권력을 전횡하고 있지만 미국은 침묵해왔다.

중국의 인권 논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밝힌 '자유의 확산'을 원칙대로 적용할 경우 미국은 외교가 불가능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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