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이젠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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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엊그제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의 자제를 간곡히 호소했다. 여중생 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당선자로서 책임을 지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과 운영 개선을 추진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얼마간의 시간'을 주문했다.

盧당선자의 자제 호소는 촛불시위의 전국적 열기에 비추어 시의적절했다. 특히 "SOFA 개정은 민족 자존심의 문제지만 북한 핵은 생존의 문제여서 북핵 문제부터 먼저 풀어나가겠다"는 그의 사태 판단에는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북핵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반미기류가 더 이상 확산할 경우 한·미 간 공조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범대위 측은 "실망스럽다"며 31일의 '1백만 추모대행진'등 평화적 촛불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盧당선자의 호소가 아니더라도 촛불시위는 이제 끝내는 것이 좋다고 우리는 본다. 첫째, 희생된 여중생에 대한 추모는 지금까지의 행사만으로도 충분하다. 둘째,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상호 대등한 한·미 관계를 바라는 우리 국민의 순수한 충정과 열망은 이미 대내외적으로 충분히 각인됐고 그 성숙한 시민의식 역시 널리 입증됐다.

남은 과제는 이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SOFA를 개정하고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일이다. 이미 양국 간 실무협의가 시작됐고 더구나 대통령당선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짐한 마당에 시간을 두고 이를 지켜봄이 국민된 도리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지나치면 곤란하다. 더구나 촛불시위는 일반 시민과 네티즌·사회운동단체들이 함께 하는 집회여서 일부 과격구호들이 끼어들고, 시위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순수성이 훼손되는 양상 또한 우려된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가 절박한 현 상황에서 우방을 자극하거나 '반미'로 오인받을 행동들은 극구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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