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명저들과의 '부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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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해제(解題)나 서평을 쓰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저자의 지적 산물을 저울질해 자리매김하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독후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명저○○선'이니 '필독 고전해제'니 하는 서평집이나 독서일기 같은, 책에 관한 책이 심심찮게 나온다. 책의 숲은 깊고 넓어 적절한 지도가 아쉬운 까닭이리라.

『book+ing 책과 만나다』 역시 책에 관한 책이다. 주로 인문과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자 18명이 자기들이 읽은 인상깊은 책 93권에 관해 쓴 글을 담았다. 그러나 책 읽는 태도가 독특하고 글쓴 방식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여느 서평집과는 다르다.

이들은 책읽기란 단지 다른 세계 속에 들어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행위라고 본다. 이런 실천적 책읽기에선 책은 '또 다른 세계'가 아니라 '기계'라고 해석한다. 이런 시각에서 골라 낸 책들은 풍성하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동체의 삶을 기록한 『가비오따스』,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이 있고 한국에서 근대적 주체가 생성되는 과정을 탐색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가 나란히 들어있다. 여기에 유교의 이단자 이탁오의 『분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각양각색의 '기계'들이 공동체, 철학, 고전 등 5개 주제로 나뉘어 실렸다.

이를테면 '지식세계의 지형도'를 마련한 셈인데 눈에 거슬리는 점도 없진 않다. 글만으로 평가받길 원한다면서 필자소개를 빠뜨린 점이나 대상이 된 책에 대한 평가가 소홀한 점은 독자들에게 불친절해 보인다. 하지만 수필 같고 평론 같은 다양한 글들이 모여 책에 대한 구미를 돋우는 미덕이 더 크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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