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美와 反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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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주요 외신들은 한·미 관계의 향방에 대한 관심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중도좌파적인 노무현 당선자가 미국과 뭔가 긴장을 초래할 수 있으며 자칫 잘못될 경우 이는 한·미동맹에 심각한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논조들을 펴고 있다. 한마디로 반미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국가가 어떤 특정국가에 적대적인가, 아니면 우호적인가를 무엇으로 가늠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슈뢰더 총리나,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관계가 껄끄럽다 해서 이들 국가가 반미 혹은 적대적인 국가라고는 할 수 없다. 자본주의·민주주의·인권 등, 제도와 문화에 있어 미국과 이들 국가의 지향점이 본질적으로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친미적인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가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만약에 이들 나라의 국민이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화를 이해하고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타도 혹은 증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9·11테러다. 9·11테러를 감행한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이 중동에서 가장 신뢰한다는 대표적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단 2개국에서 선발됐다. 결국 제도와 문화, 대중의 가치관이 친미적 혹은 반미적 지도자의 존재 여부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 전후세대 지식인들 사이에선 한·미동맹의 수평적 관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촛불시위, 미국의 독단적이고 오만한 대외정책·대북정책 등에 대한 반감 등은 모두 이러한 세대·집단들이 주도하고 있다. 겉만 보면 매우 반미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제2차 대전 후 해방된 식민지 중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꽃피운 대표적인 국가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가치의 지향점이 크게 다르지 않고 가장 깊게 뿌리내린 동맹국이 바로 한국이다.

이 때문에 군사독재 시절, 정통성이 약한 독재자들의 친미정책만을 기억하고, 그런 한국만을 친미국가로 생각한다면 이는 미국의 대단한 착각이자 오만이다. 한국이 과거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해서 '반미'로 몰아친다면 이는 미국이 수평적이고도 확대지향적인 미래의 한·미동맹에 대해 관심이 없고 한국을 존중하려는 마음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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