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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가톨릭 사제 性추문]보스턴 성당에 '아동추행' 항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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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제의 진앙지인 보스턴 대교구의 모(母)교회 성(聖) 십자가(Holy Cross)성당 앞. 11일 오전 9시 미사시간에 맞춰 성당 앞에 도착했지만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1875년 완공된 성당은 고색창연하다. 그러나 주변은 젖은 신문지와 과자봉지로 어지럽다. 관리 부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추행 피해자들이 성직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피해보상을 요구한 판에 성당을 가꾸고 돌볼 여유가 있었을까.

일요일인 지난 8일, 이 성당엔 신자보다 시위자들이 더 많았다. 피해자와 이들을 돕는 시민단체 관계자 등 4백여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피해보상과 더불어 그동안 문제 신부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버나드 로 추기경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날 로 추기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추기경은 그 시간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의 거취를 상의하기 위해 바티칸으로 가던 중이었다. 로 추기경은 결국 지난 13일 교황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바로 수리됐다.

그러나 추기경의 사표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로 추기경은 이미 5명의 신부와 함께 성추문 관련 재판에 참고인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매사추세츠주(州) 법원으로부터 받아놓고 있다.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가톨릭 단체인 '충실한 사람들의 목소리'의 대표인 제임스 포스트는 "우리는 로 추기경이 현직에 있는 한 이 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기 힘들다고 판단해 그의 사임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보스턴 대교구의 사제들을 상대로 제기된 피해보상 소송은 4백여건에 달한다. 문제 사제 8명의 비행을 기술한 3천쪽의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비행은 매우 심각하다.

로버트 번즈라는 신부는 종교의식을 빙자해 어린 소녀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982년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서 보스턴으로 교구를 옮긴 번즈 신부의 신상기록에는 '아동 추행'이 분명히 언급돼 있다.

로버트 멜펀 신부에 관한 기록은 그가 60년대 후반에 수녀가 되려는 어린 소녀 네명을 집단 성추행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78년부터 5년간 매사추세츠주 말덴에서 봉사한 리처드 번텔 신부의 경우 소년들과 성관계를 하고 그 대가로 이들에게 마약(코카인)을 건네준 것으로 돼 있다.

올해 71세인 폴 샨레이 신부는 10건의 아동 강간과 6건의 성학대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됐다. 토마스 폴리란 신부는 결혼생활의 문제점을 고백하러 온 여인과 알게 돼 11년간 동거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이런 비행이 교회 측에 여러차례 보고됐는데도 특별한 조치가 없었다는 데 특히 분개했다. 보스턴 대교구의 여성 대변인인 도나 모리세이는 "보고서에 들어 있는 내용들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엄청난 보상금 요구에 대해서는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톨릭 교회의 참담한 현실이 미국의 보스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신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93년 열한살짜리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뉴저지주의 존 뱅코(58)신부는 지난주 유죄평결을 받았다. 뉴저지주 와이코프에 사는 42세의 다른 신부도 역시 어린 소년을 추행한 혐의로 현재 기소된 상태다. 남부 애리조나주 피닉스 교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보스턴 도심의 한 식당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회사원 리처드 핼리토튼은 "이런 추문이 꼬리를 무는데도 그동안 교회 측이 왜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분개했다.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50대의 한 여성은 "내가 저지른 일인 듯 부끄럽다"면서 "그러나 대다수 사제는 오늘도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보스턴=심상복 특파원

simsb@joongang.co.kr

크리스마스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미국의 가톨릭 교계는 우울하다. 사제들의 성추문이 교회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상당수 신자가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다. 결국 문제의 본산인 보스턴 대교구의 버나드 로(72) 추기경이 지난주 사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피해보상 요구 때문에 교회는 부실기업처럼 파산보호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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