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같은 팀워크 필요" 가족·동창 위주 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실내악계의 간판스타로 활동해 오던 국내 유일의 프로 실내악단인 금호 4중주단이 해체됨으로써 한국은 실내악 불모지라는 오명을 씻기 힘들게 됐다. 1년에 한두 차례 모여 연주하면서 학연에 따라 이합집산을 계속하다 얼마 못 가서 사라지는 현상은 10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악4중주, 더 나아가 실내악을 지속적으로 꽃피울 수 있는 근본적인 방책을 외국의 성공 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

현악 4중주단은 결성하기는 쉬워도 오래 살아남기는 매우 어렵다. 정교하지만 쉽게 깨지는 유리그릇과 같다. 세계적인 악단으로 성장하기 전에는 생활비를 다른 곳에서 벌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원 스스로 실내악을 좋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음악 만들기'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으면 4중주만큼 힘들고 고된 연주활동도 없다. 음악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4중주만큼 어울리는 장르도 없다. 개인 연습과 별도로 매일 여섯시간씩 얼굴을 맞대고 연습해야 한다.

현악 4중주는 단원 간의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 명이라도 늦게 오면 연습을 시작할 수 없다. 공연을 취소한다면 몰라도 객원 단원을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동시에 세명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결혼 생활'이다.

그래서 음악원 동창이나 형제·부부 등 가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4중주단이 많다. 맨해튼 4중주단은 부부와 시동생·처제로 출발했다.

멤버 교체가 불가피하더라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1947년 런던으로 이주한 빈음악원 동창생들로 결성된 아마데우스 4중주단은 단 한 명의 단원 교체도 없이 활동하다 비올리스트 페터 슈들로프의 사망으로 창단 40년 만에 활동을 접었다.

린제이 4중주단(1966년 창단), 클리블랜드 4중주단(69년), 도쿄 4중주단(69년), 알반 베르크 4중주단(70년)의 멤버 교체는 각각 2회로 그쳤다.

지휘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교향악단과는 달리 4중주는 레퍼토리 선택에서 템포 설정 등 세부사항까지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 네명이 어깨동무하고 에베레스트산에 도전하는 셈이다.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지만 음악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무대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이런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거나 연습 도중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연주에서 감동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결국 평범하고 진부한 연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다수결 원칙이나 적당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국내에선 지금처럼 독주자 양성 위주의 커리큘럼으로는 미래의 현악 4중주단을 발굴해낼 수 없다.

국내 음대에서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실내악 클래스가 있긴 하지만 교수나 학생 모두 시간 때우기로 일관하고 있고, 정작 실내악을 전문으로 가르칠 만한 교수진도 없다. 실내악 콩쿠르도 전무한 실정이다. 그래서 금호문화재단이 젊은 실내악단을 발굴해 세계적인 콩쿠르에 도전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음악계에선 현악 4중주단을 대학의 상주(常住)악단으로 활용하면 프로 악단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실내악단을 키워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도호(東棚)음대 동창생들로 결성된 도쿄 4중주단이 줄리아드음대로 유학,이 학교에 상주하던 줄리아드 4중주단으로부터 실내악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