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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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전다방 창가에 붙어앉아 내려다보는 정거장 마당.

신발가게 주인은 귀마개 위로 장갑 낀 손을 붙이고 섰고,

추운데 저러고 싶을까, 검은 삽사리와

누렁이가 눈 위에서 한바탕 붙어 있다.

지금 막 계단을 내려간 다방 처녀는 맨종아리가

더 안쓰러운데, 연신 코트 깃만 고쳐 세우며

이발소 앞을 걸어가고 있다. (……)

정거장 마당 깨랑 콩이랑 말린 나물이랑

꼭 한 움큼씩 벌여놓은 여자는 두 무릎 새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어서 기차 시간이 돼서 더러 팔렸으면 좋겠다.

- 윤제림(1959∼) '겨울아침' 부분

역전다방·이발소·신발가게·노변 영세상 모두 사라지고,지금쯤은 카페와 햄버거점과 헤어살롱과 수퍼마켓이 들어서지 않았을지. 삽사리와 누렁이도 서양에서 수입된 애완견으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거장 마당을 있는 그대로 보존한다면, 민속촌처럼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김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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