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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18) “철강왕의 포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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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는 짧았습니다. 그러나 여운은 깁니다. 책상 위에 쌓인 일꺼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또 다시 일상입니다.
오늘 콘서트에서는 옛날에 썼던 에세이를 다듬어 올립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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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대 초 덩샤오핑이 일본을 방문합니다. 그때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에 들렀습니다. 그는 이나야마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과 마주 앉습니다.

"중국에 한국의 포철과 비슷한 철강회사를 건설하고 싶다. 도와달라"
"불가능하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하겠다. 무엇이 부족하다는 것이냐?"
"답은 하나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번역출판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전기 '鐵鋼之王'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박태준 포스코명예회장이 2003년 포스코 장가강(張家港)공장을 시잘하는 모습입니다. 당시 제가 함께 갔었습니다)

덩샤오핑은 귀국해 '중국의 포항제철'건설에 매달립니다. 상하이 바오산(寶山)에 있는 바오산철강이 대상이었습니다. 바오산은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바오산의 성장과 함께 상하이는 중국 철강 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철산업 단지 상하이.
오늘 상하이의 철강 역사를 생각합니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2500여년 전으로 돌리려 합니다.

기원전 4세기, 중국은 제후들이 패권을 위해 싸우던 춘추(春秋)시대였습니다. 중원(中原)에서는 초(楚)와 진(晉)이 남북으로 대치하고, 제(齊) 진(秦)이 동서로 견제하는 형세를 보였습니다. 이들 4강에 끼인 작은 나라들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갈팡질팡했지요.

그 때 상하이 지역에 신흥 강국이 나타납니다. 쑤저우(蘇州)에 근거지를 둔 오(吳)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지역 쩌장(浙江)땅에는 월(越)나라가 있었지요. 둘은 앙숙이었습니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었습니다. '철천지원수'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월나라 왕 구천(句踐.재위기간 BC496∼465)이 선수를 칩니다. 그는 전쟁을 일으켜 오왕 합려(闔閭)를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합려는 죽으면서 아들 부차(夫差)을 부릅니다.

"너는 내가 구천에게 죽었음을 잊겠느냐?"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복수하겠습니다"

부차는 매일 밤 가시(薪)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의 칼을 갑니다. 절치부심, 부차는 초(楚)나라에서 망명한 맹장 오자서(吳子胥)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등을 앞세워 힘을 기르게 됩니다. 그는 결국 아버지와의 맹세를 지켰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회계(會稽)땅에서 구천을 굴복시키고 항복을 받아낸 겁니다.

구천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유배지에서 쓸개를 맛보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라며 복수를 다졌습니다. 재상 범려가 옆에서 힘껏 도왔습니다. 구천은 결국 부차를 깨트렸지요. 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이 그래서 나옵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그렇게 으르렁거리고 싸웠습니다. 오죽하면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오나라 합려 때의 일입니다. 월 나라에서 칼 3자루를 보내왔습니다. 보기에도 천하 명검다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라이벌 관계이 있었던 합려는 칼에 시샘했습니다. 오나라 칼 기술이 월나라에 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이보다 더 훌륭한 칼을 만들어라"

당시 항저우(杭州)근처에 간장(幹將)과 막야(莫耶)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칼 제련공이었던 그들은 합려에게 끌려옵니다. '100일 안에 월 나라 칼 보다 더 좋은 칼을 만들어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들은 몸을 깨끗이 하고, 좋은 날을 받아서 칼 제작에 들어갑니다. 철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런 기후 변동으로 화로의 쇳물이 엉켜 붙게 됐답니다. 큰일입니다. 데드라인으로 설정된 100일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간장이 어렵게 한 마디 합니다.

"이럴 경우 스승님은 몸을 던졌는데…"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요. 막야는 잠시 고민합니다. 그리고는 말하지요.

"스승님은 자신을 희생해서 검을 만들었습니다. 우린들 못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막야는 펄펄끓는 쇳물로 뛰어듭니다. 간장은 아내의 몸뚱이가 녹아든 그 쇳물로 자웅(雌雄) 한쌍의 칼을 만들고 각각 간장과 막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남성검 이었던 '간장 검'은 숨기고 여성 검이었던 '막야 검' 만 합려에게 올립니다. 간장은 합려가 분명히 자신을 죽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합려는 간장이 또 다른 명검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명검장인을 없애려할 테니까요. 항저우에는 지금도 간장루(幹將路)과 막야루(莫耶路)가 있어 그들의 사연을 전하고 있습니다.

합려는 칼을 보고는 더없이 기뻤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험해보기로 했지요. 옆에 있는 바위를 쳤습니다. 그 바위는 지금 쑤저우의 호치우(虎丘)공원에 놓여있습니다. '시검석'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요. 그와 함께 간장의 목도 날라 갔습니다. 일설에는 그가 숨겨뒀던 '간장 검'은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쑤저우 虎丘공원에 있는 시검석입니다. 마치 칼로 내리 친듯 중간이 갈라져 있습니다)

오 나라에 간장과 막야가 있었다면 월 나라에는 구야자(歐冶子)가 있었습니다. 그는 구천을 위해 많은 칼을 만들었습니다. 아마 오나라에 보내졌던 3자루의 칼 역시 오야자가 만들었을 겁니다. 간장과 막야는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동학(同學)이기도 했지요.

오왕 합려와 그의 아들 부차 그리고 월왕 구천, 춘추시대 말기를 장식했던 이들은 모두 칼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의 칼 사랑은 유물에서 그대로 증명됩니다.

지난 1965년 후베이(胡北)성 장링(江陵)이라는 곳에서 칼이 한 자루 출토됩니다.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명검이었습니다. 그 칼 몸에 '越王句踐自作用劍'이라 쓰여있었습니다. 구천이 쓰던 칼이 2천년이 넘어 빛을 보게 된 겁니다.

그 후 1976년 같은 후베이성에서 부차가 쓰던 칼이 발굴됩니다. 칼에는 부차의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2500여년 전. 상하이 지역에서 오나라와 월나라가 급부상한 것은 바로 칼에 있었습니다. 제련기술이 먼저 발전한 것입니다. 당시 칼 제련기술은 국가의 명운을 결정지을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선진 무기를 가진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철기기술은 춘추시대가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 나라와 월 나라가 한때 중원의 제국들을 물리치고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철 제련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鐵鋼之王'이었지요.

2500년 전 철기 제련기술로 중원을 장악했던 상하이. 그 상하이가 지금 바오산철강의 선진 제철 기술로 패자(覇者)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바로 그곳 상하이의 가장 큰 서점인 상하이수청(上海書城)에 박태준 회장이 지은 '鐵鋼之王'책이 꽃혀있습니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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