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모시면 당신은 V I 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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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한국을 찾는 귀빈(VIP)들이 늘어나면서 실력과 에티켓을 갖추고 이들을 맞는 호텔 전담요원(GRO·Guest Relations Officer)들의 일손도 바빠졌다. 이들은 하루 24시간 귀빈들을 상대로 애로 사항을 풀어주고, 호텔을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그래서 호텔업계에서는 GRO를 가리켜 '서비스의 꽃'이라 부른다.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일하는 'GRO 삼총사'를 만나 에피소드와 고충을 들어봤다. 현재 한국 GRO협회장으로 일하는 곽수연(31) 대리는 경력 10년차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 등 수많은 귀빈을 모신 베테랑이다. 최진(27)·우선희(27) 사원은 입사 3년차 미만인 주니어이지만 호텔 학교에서 익힌 능숙한 매너와 영어·일어·프랑스어 등 4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어학 실력을 갖추고 있다.

-GRO는 무슨 일을 하나.

▶곽수연=호텔의 안주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손님이 드나드는 호텔에서는 고객에 대한 섬세한 안주인의 배려가 한층 중요해지고 있다. 고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원하는 것을 미리 챙겨주며 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이 우리 업무다.

▶최진=하루 일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오전에는 당일 귀빈들을 모실 준비를 한다. 출근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행선지의 위치를 파악해 안내한다. 또 귀빈이 당일 참석해야 할 행사를 체크해 안내하는 일을 한다.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귀빈 접대 및 동행 업무에 나서고 일과 후에는 다음날 귀빈 명단을 점검하고 손님들이 제기했던 불편 사항에 대해 만족할 만한 조치를 했는지 점검한다.

▶우선희=투숙 귀빈에 대한 비서 업무 및 호텔 체크인과 체크아웃 업무를 돌봐주는 일도 하고 있다.

-고충이 있다면.

▶최=귀빈임을 내세워 때로는 조급하게 일을 먼저 처리해 달라고 요구할 때 무척 애를 먹는다. 이런 고객들은 호텔에 항의 서한을 자주 보내기도 한다.

▶우=손님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때 고충이 크다. 어떤 손님은 늘 특실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는데 객실이 모자랄 경우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 그럴 땐 화를 내는 손님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며 양해를 구하고 때론 애교를 부려 위기를 넘기지만 어려움이 많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지난 6월 월드컵 8강전이 있기 전날밤 일이다. 늦은 시각에 손님 한 명이 뒤늦게 표 두장을 구해달라고 했다.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고객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인터넷 등을 뒤지며 수소문에 나섰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결국 팔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날 손님과 함께 광주까지 내려가 경기장 정문에서 어렵게 구한 표 두장을 전해주었을 때 고객이 감격해하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우=몇 달전 조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투숙했을 때였다. 호텔의 17층 귀빈라운지에 부시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 만을 위한 특별 아침 식사를 매일 준비했다. 평소엔 보기 힘들었던 특별메뉴들이 많이 준비됐는데 정작 손님들은 바쁜 일정에 피곤했는지 늦잠을 자느라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마지막날 아침에 드디어 모습을 보였는데 온갖 정성을 들인 음식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정작 먹은 음식은 고작 요구르트 두개가 전부였다. 열심히 준비한 직원들이 모두 허탈해 했다.

-GRO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곽=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겸손한 마음가짐과 아무리 내가 옳더라도 고객의 말을 존중할 수 있는 인내심과 포용력을 갖춰야 한다. 또 다양한 문화에 나를 맞출 수 있는 민첩성과 세련된 매너도 필요하다.

▶최=항상 철저한 자기 계발과 올바른 윤리관이 서비스 분야에서 일할 사람의 기본 자세라고 생각한다.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는가는 더 중요하다. 품위 있는 자세와 따뜻한 마음 가짐의 조화야말로 GRO가 되려는 사람이 갖춰야할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유권하 기자

kh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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