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먹는게 소원이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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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굴러가유!"라고 소리치면 집채만한 수박이 산에서 굴러 오고, 개똥참외도 어찌나 큰지 꽁지부터 먹기 시작하면 참외 속으로 머리가 들어가고 몸뚱이까지 들어간다. 산골 마을 '지오' 이야기다. 이 지오에 서울 구경 한 청년이 돌아온다. 서울 수박은 머리통만 하고, 참외는 주먹만 해서 먹기도 좋고 들고 다니기도 좋다더니, 수박·참외보다 '바나나'가 맛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지오 사람들은 바나나 한번 먹는 게 소원이 된다. 몇해가 흘러 별 두개 단 장군이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고 고속도로가 생기더니, 지오 마을에서 바나나 실은 트럭 한채가 뒤집어진다. 슬금슬금 바나나를 들고 사라진 마을 사람들. 삶아 먹고, 간장에 담가 놓고 별의별 방법을 동원하던 사람들은 경찰 조사까지 받지만 비밀을 지킨다. 먼 훗날 친구들이 들려준 옛 이야기를 글로 써봤다는 김기정씨의 책은 한편의 꽁트집이다. 어린이에게는 엉뚱한 상상력을, 어른에게는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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