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통제된 사회'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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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89년 '6.4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趙紫陽)이 사망한 지 사흘째. 그러나 중국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여장이 넘는 두꺼운 신문지 안 한구석에 아주 조그만 크기로 그의 사망 소식이 겨우 실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더욱 광범위한 대중이 소식을 알 수 있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선 그의 사망 기사는 아예 취급조차 되지 않았다.

18일 베이징(北京)에서 한국 신문을 받아본 한국 교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오 전 총서기의 사망 소식이 실린 1면 기사를 제외하고는 사진과 함께 다뤄진 자세한 관련 소식 면이 모두 찢긴 채 배달됐기 때문이다.

"한국 신문뿐 아니라 이날 중국으로 반입된 영자지와 일본 신문 등도 마찬가지로 자오쯔양 사망 관련 기사 면들이 대부분 찢겼다"고 베이징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또 "그나마 과거의 비슷한 사례와 비교할 때 1면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놔둔 것만 해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모두 주목하는 자오 전 총서기의 죽음.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문호를 앞장서 활짝 열어 오늘날 중국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던 이 인물이 사망한 사실에 대해 정작 중국인 자신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는 자오 전 총서기가 지닌 정치적 그림자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천안문 사태 때 학생 편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던 자오의 사망이 제2의 천안문 사태, 나아가 정치적 소요로 번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중국의 통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빈소가 차려진 자오의 자택 부근에는 일반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다. 장례에 관한 기사는 중국 내 언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의 현실은 이렇다. 경제는 문호 개방 이후 첨단 자본주의를 뺨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건국 당시의 판형(版型) 그대로다. 자오의 사망은 중국이 경제적인 발전상과 상관없이 아직 정치적으로는 깊숙이 통제된 사회라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