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새만금' 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만금사업은 영남의 정치세력과 호남의 정치세력이 야합한 우리시대 낡은 정치의 기형적 산물이다. 박정희 시대 경북 중심의 편향 개발에 반발해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주장해온 새만금사업을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사업으로 출발한다. 군산항-고군산군도-변산반도를 33㎞의 방조제로 이어 바다와 갯벌을 4만ha(1억2천만평)에 달하는 농토와 담수호로 만들고자 하는 사상 최대의 국토개발사업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국토개발의 전체적 밑그림 없이, 간척사업 이후 생겨날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도 없이 호남 차별에 대한 정치적 보상으로 출발한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우리시대 개발과 보존의 투쟁사를 담은 축소판이다. 89년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이 확정되고 91년 시행계획이 확정된다. 그러나 96년 시화호 오염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단체들은 새만금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민단체의 갯벌 보존 요구와 지역주민들의 농지 개발이라는 맞대결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이후 정부는 쌀 과잉 공급으로 지난해부터 2005년까지 쌀 재배 면적을 12%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새만금, 곧 농지개발이라는 절대적 목표가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국토개발계획이었다.

지금껏 1조원을 투입해 방조제를 쌓은 새만금 사업은 허물 수도, 더 쌓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다. 대선후보들이 줄지어 온갖 좋은 소리를 다 하고 있지만 이 새만금사업에 대한 어떤 대안 제시도 내놓질 못하고 있다. 반대하면 지역표가 떨어질 것이고 강행하자니 명분과 목표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정치적 야합이 만들어낸 우리시대의 잘못된 새만금 현상을 이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장은 지난 3년간 서울과 베네치아를 오가며 대학 강의를 해왔다. 그는 바다도시 베네치아에 살면서 새만금과 거의 같은 크기인 베네치아 라구나와 새만금을 비교 연구하기 시작했다. 새만금을 안에서 보면 바다와 갯벌만 보인다. 金교수는 새만금을 새만금 밖에서 보기로 했다. 새만금 바깥 더 큰 세계 관점에서, 황해안 도시공동체와 서해안 도시연합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새만금을 어떻게 조정해 새만금의 미래를 열 것인가를 연구했다.

그 결과 그가 제안하는 새만금 바다도시는 방조제 도시, 갯벌 도시, 하구 도시로 이뤄진다. 방조제 33㎞ 중 4.5㎞는 '다행히!'아직 미완성이다. 완성된 1, 3호 방조제와 공사 중인 2, 4호 방조제 사이의 가력도와 신시도의 두 배수갑문 사이에 직각의 방조제를 덧붙이면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세개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안바다와 바깥바다가 형성되는 것이다. 방조제 안바다 쪽으로 수상구조물을 형성함으로써 여기에 방조제 도시 용지를 만들 수 있다.

새만금 1억2천만평 중 5천만평이 갯벌이다. 갯벌 위에 인프라를 장착한 인공토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공토지 주변에 독립적으로 건축물을 세우는 방식이다. 베네치아는 1백40여개 섬으로 이뤄진 인공도시인 데 비해 새만금 갯벌도시는 갯벌을 충분히 살리면서 도시를 일구는 방식이다. 새만금 바다도시가 건설되면 전북 봉화산 일대는 바다도시와 내륙도시를 잇는 접점이 되고 군산항·서해안고속도로·호남고속철도·군산공항·김제공항의 방사선 중심에 놓이면서 인천공항과 연계를 통해 새만금 바다도시는 서해안 전체를 연결하는 동북아의 관문도시로 부상한다는 계획이다.

김석철의 '새만금 바다도시'계획은 잘못된 과거 위에서 새로운 미래의 대안을 찾는 희망찾기다. 그의 계획이 기술적으로, 현실적으로 더 보완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안엔 새로운 출구가 보인다.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맞대결을 감싸면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있다.

김석철식 대안 제시를 나는 대선후보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다. 과거 비리 들추기에 국민은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지난 시대의 새만금 현상에 얽매여 한치 앞을 나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앞으로 우리가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 희망과 꿈을 제시하는 대선후보라야 그가 진정한 우리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은 김석철을 만나라. 그의 새만금 도시에서 꿈과 희망 가꾸기를 배우고 실천토록 하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