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민국'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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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포브스지는 지난 9월 '가장 아름다운 이혼 커플'을 선정했다. 그 주인공은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과 전 부인 수전이었다. 1978년 결별한 뒤에도 국제 원조계획 등에 함께 참여하고 서로를 줄곧 칭찬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의 한 중견 정치인이 자신이 속한 정당과 대선후보에게 극언을 하며 당을 떠났다. 그가 보인 언어 기교의 한계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만일 그가 "지난 5년간 나의 이 당 생활은 이런저런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며 칭찬 비슷한 언급을 하고 "그러나 이 시점에서 노선이 다르므로 당을 떠나겠다"고 했다면 결별의 품격이 달라졌을 것이다. 특정 정치인만 나무랄 일이 아니고 사실 한국사람들은 칭찬에 너무 인색하다. 칭찬이라는 '마법의 상자'를 활용할 줄 모른다. 억지로라도 스타나 영웅을 만들어내는 선진국에는 칭찬문화가 팽배하다.

한국은 한 사람이 잘 나가거나 뛰어나면 갖가지 공격을 퍼부어 쓰러뜨리는 풍토다. 그러다보니 존경받는 인물이 '멸종 위기'다.

다행히 지난 월드컵은 '엽전(葉錢) 근성'으로 상징되는 일제시대 이래 한국인의 부정적인 두뇌회로를 긍정적으로 바꿔놓는 계기였다. 이제 우리도 칭찬 바이러스를 퍼뜨려 긍정이 지배하는 나라로 변모할 때가 됐다. '칭찬민국 코리아'를 만들자는 것이다.

월드컵 때의 시민의식도 언론의 칭찬이 만들어낸 것이다. 만일 언론들이 첫 가두응원 때 일부 더러운 풍경을 부각시켰다면 길거리를 깨끗이 치우고 가는 시민의식은 정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영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가 최근 펴낸 『You Excellent(당신 우수해)!』라는 책은 칭찬의 마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바다의 맹수인 범고래가 3t이 넘는 몸무게임에도 놀이공원에서 물위 3m까지 뛰어오르는 매혹적인 묘기를 보일 수 있게 된 원천이 칭찬에 있음을 규명한다. 조련사들은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범고래가 조금이라도 행동하면 배를 쓰다듬어주는 등 계속 칭찬을 해주는 전략을 썼다. 잘못했을 때는 못본 체하며 빨리 관심을 전환시켰다.

블랜차드는 말한다. 사람들은 타인이 일을 잘하고 있을 때는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잘못은 잽싸게 알아내 뒤통수를 친다고. 그는 조직이건 가정이건 성공하거나 행복해지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잘하고 있는 부분을 열심히 찾아내 칭찬해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행히 근래 한국에도 칭찬 바이러스의 씨앗들이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조흥은행·교보생명·대한생명·(주)효성·피자헛 등이 칭찬 릴레이 운동에 나서 조직이 활성화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선행칭찬운동본부'도 생겨 홈페이지(sunhaeng. or. kr)를 통한 칭찬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민주당 김근태 의원을 칭찬하기도 한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도 올해 초부터 '청소년을 칭찬합시다'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6·13 지방선거 때 30,40대들이 주축이 돼 만든 '파워비전 21'(회장 김준길)은 '상대 후보를 칭찬합시다'라는 캠페인을 펼쳐 인상적이었다. 유세현장에서 '적'을 칭찬하는 이벤트들이 있었고 그 덕인지 이 단체 후원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한 97명 중 43명이 지방의원에 당선됐다.

대선이 '증오의 전사(戰士)들'에 의한 폭로전으로 혼탁해지고 있다. 비판할 땐 하더라도 상대의 장점을 칭찬도 하는 멋쟁이 대선후보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넓은 가슴에 표가 더 몰릴 것이 아닌가.

il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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