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빠진 부동산 시장 아파트 이어 토지·빌딩도 거래 거의 끊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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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 J공인중개사무소 李모 사장은 최근 1주일간 휴가를 떠났다. 예년 같으면 겨울방학 시즌을 앞두고 한창 매매 물량 확보에 열을 올려야 하는데도 문을 닫았다. "최근 한 달 동안 매매 거래를 한 건도 하지 못했다"는 李사장은 "더구나 방학도 늦어져 매수 움직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심각한 거래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여름 이후 아파트부터 거래 부진이 시작되더니 요즘엔 토지·빌딩 등으로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여윳돈이 많기는 하지만 부동산 값이 많이 올라 추가 상승 여력이 적은 데다 세금 강화, 대출 축소,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등의 규제가 잇따라 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특히 내년 국내외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매수 심리가 수그러들면서 관망세로 돌아선 것이 거래 침체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 조사 결과 최근 3주간 서울 아파트 값이 올랐지만 이는 전반적으로 거래가 없는 가운데 일부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호가가 오른 것이 반영된 것이다. 투자용이든 실거주용이든 매수자가 완전히 관망세로 돌아섰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서울공인 정용현 사장은 "재건축 조기 추진의 기대감이 많이 없어지면서 개포주공 2,3,4단지 아파트의 거래가 특히 줄었다"며 "매수세가 전혀 없는 것으로 봐 올 겨울 이사철은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수요가 많은 서울 상계동 아파트 단지도 조용하다. 상계동 럭키공인 최응복 사장은 "지난해 이맘때는 매매,전·월세 합쳐 한 달에 30여건 거래를 했으나 지난달에는 14건밖에 성사시키지 못했다"며 "경기불안 조짐에다 대출 축소 등의 조치로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 같다"고 전했다.

토지도 겨울잠에 들어갔다. 11월 1일 정부가 경기도의 64%를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정하자 갑작스레 거래가 끊기면서 가격도 급락하기 시작했다. 땅 전문 중개법인인 돌공인 진명기 사장은 "수도권 모든 지역의 땅이 얼어붙었다"며 "올 겨울 동안 거래가 급속히 줄면서 땅값이 20%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포시 고촌면의 K공인중개사무소 鄭모 사장은 "지난 여름 평당 45만원에 나왔던 사우동의 준농림지가 지금 평당 35만원을 호가해도 매수문의가 전혀 없을 정도"라고 말했으며, 남양주시 수동의 한 중개업자는 "종전에는 매물이 싸게 나오면 사려는 사람이 많았으나 지금은 전화 문의조차 없다"고 전했다.

빌딩 거래는 일찌감치 죽었다. 10억∼20억원대의 중소형 빌딩은 올 여름 임대수입을 노린 투자수요가 몰려 매물이 귀했으나 10월부터 매기가 사라지더니 지금은 찾는 사람이 없다. BS컨설팅 김상훈 사장은 "올해 값이 많이 올라 추가상승 여력이 없는 데다 내년 경기가 불안하다는 전망 때문에 투자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hs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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