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향해, 이미지를 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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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사진은 프랑스에서 발명됐지만 현대사진의 원조는 미국이라 할 수 있다. 신디 셔먼, 낸 골딘,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 미국의 동시대 사진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사진을 서울에서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이 전시는 '현실''정체성''일상'이라는 세가지 소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날의 사진은 이 세가지가 다 문제로 가득 차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확실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강한 나라였고, 미국이 주도해 벌이는 일은 전쟁이든 영화든 다 정당하고 멋진 일이었다. 사진가들은 풍경이든 인물이든 광고든 사진을 통해 그런 확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믿었고, 그런 확신을 전달하는 사진의 능력에 대해 조금도 회의를 갖지 않았다.

60년대가 되자 상황은 바뀌었다. 이 전시의 소주제들은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영역들이다.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서 보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또 인종차별·인종분규 등을 겪으면서 백인을 통해서만 규정되던 미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온하고 안전한 일상은 가족관계의 해체, 산업구조의 변화, 성정체성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불안해졌다. 사진가들은 그런 변화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진이 정치적이든 일상적이든 적절한 지각적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인가에 대해 회의하게 됐고 그 결과 70년대 말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풍미하게 됐다.

관객이 이번 전시를 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사진은 하나도 없다. 만일 그런 것을 기대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의 내면 표현 같은 것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실제로 이 전시에 나온 사진들 중에는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딱 한 작가에 대해서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전시장을 들어섰을 때 바로 마주 보이는 리처드 프린스의 사진은 잡지나 신문에 난 사진을 크게 확대 촬영하여 액자에 넣은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러나 잡지에 실리는 사진의 위상은 소비품이며, 우리의 눈길이 아주 짧게만 머무르는 반면에, 액자에 끼워져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소비품이 아니라 감상과 관찰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사진의 물질적·의미론적 존재방식이 바뀌는 효과가 생긴다. 나아가 그런 위상 전환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흔히 말하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라는 것이 어떤 존재방식을 지니고 있는지 성찰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작품의 의미다.

결국 그런 사실은, 이제 사진이 간단하게 눈으로만 보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관습, 촉각과 물질성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 준

이미지비평, 계원조형예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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