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호나우두 원맨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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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호나우두·호베르투 카를루스, 스페인의 라울,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흰 유니폼을 입고 온 '당대의 축구 최고수'들은 축구가 얼마나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경기인지를 알려주려고 온 마법사들이었다.

5개월 전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남미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이 만나 세계 최강 클럽을 가리는 도요타컵 대회가 열렸다.

유럽팀과 남미팀 간의 통산 전적 11승11패의 팽팽한 균형이 깨지는 한판이었지만 애초부터 남미 대표 올림피아(파라과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로는 너무 약했다. 예상대로 마드리드는 전·후반 한골씩을 넣어 2-0으로 완승, 1998년 이후 4년 만에 우승컵을 찾아갔다.

결승골은 역시 '지존' 호나우두의 몫이었다.

전반 13분 미드필드 왼쪽에서 카를루스가 땅볼 크로스, 라울이 슬쩍 흘려주자 호나우두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수비 한명을 제치고 가볍게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다. 월드컵 결승전 두 골의 주인공은 이날도 요코하마를 '황제의 무대'로 만들었다.

1분 뒤 올림피아는 오르테만의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면서 절호의 동점골 찬스를 놓쳤다. 전반 37분 무렵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패스가 20번 이상 이어져 관중석을 환호와 탄성으로 물결치게 했다.

화려한 '마드리드 쇼'는 후반전에서도 계속됐다.

7분 호나우두가 페널티 오른쪽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두 명을 뚫고 오른발 슈팅을 했지만 볼은 골대를 살짝 비켜갔다.

10분에는 카를루스가 페널티 외곽에서 회심의 왼발슛을 날렸다. 마법처럼 휜 UFO 킥을 골키퍼가 가까스로 쳐냈다.

후반 23분 또 한번 요코하마 경기장이 들썩거렸다. 마켈레레가 찔러준 볼을 받은 호나우두가 단독 질주, 골키퍼까지 제친 뒤 안쪽으로 찔러줬다. 텅 빈 골문을 향해 라울과 캄비아소가 돌진했지만 두 선수 모두 어이없이 헛발질, 추가골 찬스를 놓쳤다. 31분에는 라울이 골지역 오른쪽에서 세 명을 농락하며 슈팅했지만 수비수 몸을 맞고 아웃됐다.

후반 39분 마드리드의 쐐기골이 터졌다. 피구의 오른발 크로스를 호나우두와 교체 투입된 호세 구티에레스가 헤딩슛, 올림피아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올림피아의 마지막 슈팅을 마드리드 엘게라가 걷어내자 심판이 길게 종료 휘슬을 울렸다. 호나우두는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경기를 지켜본 김호곤 한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마드리드의 패스 타이밍이 무척 빨랐고, 패스 연결도 환상적이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래위로 크게 움직이면서 수비의 밸런스를 잡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경기를 본 최용수(제프 이치하라)도 "호나우두의 순간 움직임이 너무나 폭발적이었다. 역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지단은 쉽게 쉽게 움직이면서도 필살의 패스를 해냈다"며 혀를 내둘렀다.

요코하마=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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