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62년 11월 18일이었다.

아무도 공식적으로는 말할 수 없었던 '노동자 천국'내의 강제노동수용소의 존재라는 터부를 건드린 이 소설은 발표 직후부터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당시는 냉전이 한창일 때라 소련의 치부를 건드린 이 소설에 대한 서방의 관심과 선전은 대단했다. 때문에 솔제니친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문학성 때문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도움 때문이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당시 이 작품을 게재했던 문학잡지 '노브이 미르(신세계)'는 초판 9만6천부를 찍었는 데 발매와 동시에 매진됐다.

잡지사는 두 차례에 걸쳐 추가인쇄를 했는 데 추가본 85만부도 순식간에 동났다. 다시 당국의 허락을 얻으려 했지만 공산당과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이를 허락지 않아 공식적 판매는 여기서 그쳤다. 하지만 문학비평가 알렉산드르 아르한겔스키의 말처럼 "이 작품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으로 "이반 데니소비치가 없었더라면 페레스트로이카도, 개혁도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꼭 반체제나 서방, 혹은 문학 평론가들 사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련 공산당도 기관지인 '프라우다'등을 동원해 한동안 선전과 칭송에 열을 올렸다.당시 프라우다는 "이 작품은 우리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진실"이며 "우리의 문학은 진귀한 재능을 얻었다"고 말했다.

공산당의 우호적인 태도는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가 수용소 내에서도 자신의 기술에 긍지를 갖고 자기 혼을 지켜나가는 훌륭한 노동자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이 작품의 폭발성을 알아챈 소련 당국은 황급히 이 작품과 솔제니친을 탄압했다. 지난 11월 18일로 이 작품이 발간된 지 40주년이 됐다. 국내에서는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문학계에서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그 후의 40년을 되새기는 각종 특집과 회고물들을 기획해 독자에게 서비스했다. 문화의 시대라지만 지나친 대중화와 이벤트성 행사만이 넘치고 진지한 모색이 모자란 한국의 풍토에서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