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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색잡지에 실렸던 SF 고전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1953년 미국에서 창간된 이래 '플레이보이'는 알다시피 포르노 잡지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사진만으로 이뤄진 도색잡지와 달리 '플레이보이'는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부터 나딘 고디머, 무라카미 하루키 등 세계의 대표적 작가들의 글을 게재하며 나름의 '품위'를 유지하려 애썼다.

순도 높은 이미지를 구현한다 해서 이 잡지가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잡지에 게재된 소설은 흥미를 자아낸다. 이 책은 '플레이보이'에 연재된 과학소설 중 시대와 장르·작가별 대표작을 선정해 싣고 있다.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인 필립 K 딕과 '빼앗긴 자들''어둠의 왼손' 등으로 유명한 어슐러 K 르 귄을 비롯해 도리스 레싱, 아서 C 클라크 등 과학소설의 대표주자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참여 작가들 대개가 1920∼30년대생인 데서 알 수 있듯 책에 실린 단편들도 발표 연도가 꽤 오래됐지만 다루는 주제만큼은 요즘의 이슈들 못지 않다.

이는 과학소설이 단지 엉뚱한 발상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시점을 미래로 이동시킨 뒤 개연성있는 과학 지식을 동원해 인간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복제 인간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 것인가(르 귄의 '아홉 개의 생명'), 인구 폭발에 직면해 성욕을 억제시키는 약을 복용시키려는 독재자(커트 보니거트 2세의 '원숭이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컴퓨터와 인간의 결합에 따른 정체성 상실(프레드릭 폴의 '설계된 인간'), 텔레비전에 빠져 인생을 망친 인간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오래된 작품이라 문체가 다소 고전적인 느낌은 들지만 과학소설 고전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일별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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