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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 괴질 농가피해 확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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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토종벌 괴질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전남 곡성·구례·담양 등 주요 양봉농가를 휩쓸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16일 전남도와 한국토봉협회 등에 따르면 전남지역 17개 시·군 1736 농가를 조사한 결과, 10만 군(벌통)중 56%인 5만6000 군이 폐사하거나 질병에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강원지역에서 처음 나타난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 애벌레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병 발생 초기의 모습이 물집이 생긴 모습과 비슷해 낭충병으로 불린다. 또 서양에서 들여온 양봉보다 토종벌에 심각한 피해를 주며, 꿀 수확량이 평년과 비교해 70~90%까지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곡성에서 토종벌을 키우는 김모(61)씨는 “벌 키운 지 2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며 “예년 같으면 230여 군이 있어야 하는 데 병든 벌통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것은 고작 120여 군 뿐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소독약을 뿌려 보고 벌군(벌통) 주변을 청소하는 등 온갖 노력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곡성군은 400여 토종벌 농가에서 1만2000 군을 키우는데, 이 가운데 3분의 2가 김씨처럼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 질병의 원인과 감염 경로 등이 밝혀지지 않아 예방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보상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토종벌 농가들은 낭충병이 전국적인 현상인 만큼 재해로 인정하고 피해를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축전염병이 아닌 만큼 경영안정자금, 시설 현대화 지원 외에 보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축산업으로 분류된 꿀벌 농사는 재해나 법정 전염병에 한해서만 피해 보상이 가능한 실정이다. 토종벌 농가 대표들은 지난 12일 전북 남원에서 임시 총회를 열어 낭충병 재해 인정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는 특별 재해 인정과 농가 보상, 법정 전염병 입법화를 촉구하는 지역 별 궐기대회와 상경 투쟁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영주 전남도 농림식품국장은 “피해 보상이 어렵다면 군당 10만 원 상당의 꿀벌 입식비라도 지원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며 “피해 농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치료법이 나오지 않는 한 이 병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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