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험 ‘양판점’서 골라 든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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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사망 보험금이 회사별로 천차만별이라 혼란스러웠는데, 여러 상품을 한꺼번에 비교하니 판단이 서네요.”

지난 13일 보험대리점인 에이플러스에셋을 찾은 의사 이모(40)씨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15개 종신보험을 비교한 자료가 놓여 있었다. 이미 보험금 1억원짜리 종신보험에 가입했던 이씨는 사망보장을 높여 추가 가입을 원했다. 기존에 거래했던 A사와 B사의 상품을 알아보았다. 월 200만원씩 20년 납부라는 같은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보장 보험금이 들쭉날쭉했다. 그렇다고 10여 개 상품을 일일이 찾아보기도 어렵고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곳이 보험대리점이었다.

이곳에서 모집인의 설명을 듣자 사망보험금이 최저 18억원에서 최고 28억원까지 차이 난다는 걸 알았다. 적립급 활용 방식이 달라 보험금이 차이가 난다는 설명을 들은 그는 “다양한 상품을 원스톱 쇼핑하듯 알아볼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 번에 비교해 보고 살 수 있는 곳’. 전자제품 양판점만의 얘기가 아니다. 보험상품도 한꺼번에 비교해 보고 꼬치꼬치 따져 고를 수 있다. 보험 양판점인 ‘독립보험대리점(GA)’에서다. 보험 신규계약의 절반 이상이 GA를 통해 이루어질 정도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설계사 수가 100명이 넘는 GA는 2009년 9월 현재 195개에 이르고 있다. 2003년까지만 해도 2개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0개는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계사 수가 1000명 이상인 GA도 8개나 된다.

보험판매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국내 생명보험사 22개 중 GA를 통한 판매비중이 50%를 넘은 곳이 11개사나 됐다. GA는 특정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 맞춤형 종합자산관리서비스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에이플러스에셋은 지난해 5월 부동산중개전문회사를 세워 부동산 투자설계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FN스타즈는 지난해 11월 신용대출 중개사업에 뛰어들어 은행·저축은행·캐피털사의 대출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곳저곳 둘러보지 않고 한 군데서 여러 상품을 비교해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 유통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쟁도 소비자들에겐 득이다.

문제는 GA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속 설계사와 달리 GA 설계사는 여러 회사의 금융상품을 함께 팔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금감원이 지난해 조사한 불완전 판매(소비자에게 상품 내용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대충대충 판매하는 행위) 비율은 GA가 7.6%나 됐다. 개인 설계사(5.5%)나 전속 대리점(5.8%)에 비해 높았다. 그런데도 GA는 불완전 판매에 따른 소비자 피해에 대해 직접 배상할 책임이 없다. 보험사가 우선 배상하고 구상권을 청구하지만 GA의 판매 비중이 크기 때문에 구상권 청구가 쉽지 않다.

이런 구조에서 GA의 경영이 투명한지 감시할 수단도 부족하다. GA는 준법 감시인을 두지 않아도 된다. 경영현황 공시와 보고 의무도 없다. 금감원이 정기 검사를 하는 게 전부다. 홍익대 정세창 교수(금융보험 전공)는 “감독당국의 감독권을 강화하고, GA의 경영 공시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희진 기자

◆독립보험대리점(General Agency)=여러 보험회사와 계약을 하고 다양한 보험 상품을 판다. 한 회사의 보험상품만을 파는 전속 대리점과 달리 제공하는 상품 정보가 다양하다. 국내에는 2001년부터 등장했다. 회사별로 상품을 한 번에 비교할 수 있어 소비자는 원하는 보험상품을 고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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